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예술 속 활짝 핀 꽃, 우리 삶을 보여주다

입력 : 2014.01.23 05:31 | 수정 : 2014.01.23 08:55

빛을 표현하기 위해 수련만 수백 번 그린 모네
로세티는 청초하고 우아한 순백의 백합으로 성령 임신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 담아냈어요
사랑하는 여인 모습 담은 피카소의 '꽃의 여인'
리베라의 '꽃 파는 사람', 가난의 고난 그려냈죠

독일의 수채화가인 마리아-테레제 티트마이어는 꽃을 다음과 같이 찬미했어요. "한 송이 꽃을 바라보면 하나의 얼굴과 개성이 느껴져요. 꽃은 아름다운 생김새, 색깔, 매혹적인 향기로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을 선사하지요." 자연의 선물인 꽃은 예술가에게 창작의 원천이 됩니다. 꽃이 있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예술 작품에서 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그림1 -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수태고지 작품 사진
그림1 -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수태고지, 캔버스에 유채, 1849~50년.
그림 1은 19세기 영국 화가인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대표작입니다. 잠옷 차림의 젊은 여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고, 침대 옆에 선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건네고 있어요. 남자는 왜 여자의 침실에 들어와 꽃을 주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흰 백합과 두 인물의 머리 주변을 에워싼 황금색 원형이 말해준답니다.

먼저 흰 백합은 기독교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 바로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이거든요. 기독교인들은 청초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순백의 백합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지요. 또 황금색 원형은 신성한 인물의 머리 주변에만 나타나는 후광이에요. 화가는 흰 백합과 후광으로 이 그림의 주제와 제목이 '수태고지(受胎告知)'임을 알려주고 있어요. 수태고지란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말해요. 만약 흰 백합이 성모 마리아의 상징임을 모른다면, 이 그림의 주제가 수태고지라는 것도, 화가들이 수태고지에 늘 흰 백합을 그리는 이유도 알 수 없겠지요.

그림2 - 클로드 모네, 수련 작품 사진
그림2 - 클로드 모네, 수련, 캔버스에 유채, 1906년.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에게도 꽃은 중요한 소재였어요. 그림 2는 모네가 그린 수련 그림이에요. 모네는 프랑스 센 강변에 자리한 마을 '지베르니'에 아름다운 물의 정원을 직접 만들고 수련으로 장식했답니다. 그리고 이 정원에서 자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수련 연작을 탄생시켰지요. 모네가 그린 수련 그림은 무려 200여점에 달해요. 그는 왜 수백 번이나 수련을 그렸을까요? 물에 비친 빛의 모습을 그림에 정확하게 담아내기 위해서였어요. 모네는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라고 여겼거든요. 사물의 색깔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물은 모네에게 빛의 효과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도구였어요. 정원에 심은 수많은 꽃 중에서 수련을 골라 반복하여 그린 것도 꽃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물에 비친 빛의 효과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답니다. 그림 2에서는 하늘에 뜬 구름, 땅에서 자라는 나무, 물 위에 핀 수련이 한데 어울려 황홀한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그림3 - 디에고 리베라, 꽃 파는 사람 작품 사진
그림3 - 디에고 리베라, 꽃 파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1942년.
모네의 꽃이 수련이라면, 멕시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꽃은 카라입니다. 그림 3은 멕시코의 여성 노동자가 카라꽃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등에 짊어지는 순간을 그린 거예요. 그림 속 여자는 꽃을 팔아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이에요. 꽃 파는 여자는 꽃바구니가 너무도 무거워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워 보입니다. 가엾은 여자를 돕기 위해 한 남자가 뒤에서 양손으로 바구니를 들어 올려주는군요. 리베라는 왜 꽃의 무게에 짓눌린 노동자를 그린 걸까요? 그는 멕시코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알리기 위해 꽃을 선택했어요. 리베라는 예술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믿었던 혁명가형 예술가예요. 예술이 멕시코 민중에게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확신했지요. 리베라는 "예술은 더 나은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이 그림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는 꽃이 아름다움의 대상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꽃은 고통스러운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지요.

그림4 - 파블로 피카소, 꽃의 여인 작품 사진
그림4 - 파블로 피카소, 꽃의 여인, 캔버스에 유채, 1946년.

그런가 하면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도 꽃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 4를 보세요. 꽃의 생김새가 무척 특이하지요? 사람처럼 눈, 코, 입이 있네요. 왜냐하면 이 꽃은 사실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프랑수아즈 질로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에요. 피카소는 프랑수아즈의 얼굴은 꽃잎, 눈·코·입은 암술과 수술, 몸은 줄기, 머리카락은 초록색 잎에 비유했어요. 두 개의 젖가슴과 팔도 잎으로 표현했지요. 피카소는 프랑수아즈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지만, 이 꽃은 실물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답니다. 프랑수아즈는 눈이 크며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날씬한 몸매의 아름다운 여자였거든요. 꽃이면서 동시에 여자이기도 한 이 그림은 인체의 구조와 식물의 구조를 비교하면서 감상하는 즐거움도 안겨줍니다.

마리아-테레제 티트마이어의 그림이 담긴 '플라워 스토리(FLOWER STORY)'라는 책에 "꽃을 노래하는 것은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어요. 꽃이 있는 그림들을 감상하니 이 말이 가슴 깊이 들어오네요. 단지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꽃이 우리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연인의 모습을 꽃으로 표현하였어요. 여러분은 자신을 꽃에 비유한다면 어떤 꽃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글로 정리하고, 여러분의 특징을 잘 드러낸 꽃 그림을 그려보세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