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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 94곳, 옛 집 218채… 이 마을은 살아있는 민속촌

입력 : 2014.01.22 05:26 | 수정 : 2014.01.22 09:01

[66] 낙안읍성

옛날 사람들이 살던 마을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에 가장 좋은 곳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입니다. '읍성(邑城)'이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자 마을 전체를 빙 둘러 쌓은 성을 말해요. 읍성 안에는 일반 백성이 살던 민가와 관리들이 머물며 업무를 보던 관아(★) 등이 있었지요. 낙안읍성 안에는 지금도 94개의 관아와 218채의 민가가 남아 있어요. 민가에는 약 120가구, 300여명의 주민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집에서 살고 있답니다. 살아있는 민속촌인 셈이에요.

낙안읍성의 역사는 약 600년 전인 13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처음에는 잦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흙담이 허물어지자 1424년 흙 대신 돌을 이용해 더 넓은 성을 쌓았지요. 그때의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곳 중 하나라고 해요. 낙안읍성을 돌로 쌓은 사람은 당시 군수를 지낸 임경업 장군이에요. 그래서 마을에 그를 기리는 비각이 세워져 있답니다.

600여년 전 지어진 낙안읍성에는 지금도 3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해요(왼쪽 사진). 낙안읍성을 돌로 새로 쌓은 임경업 장군의 비각이에요(오른쪽 사진).
600여년 전 지어진 낙안읍성에는 지금도 3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해요(왼쪽 사진). 낙안읍성을 돌로 새로 쌓은 임경업 장군의 비각이에요(오른쪽 사진). /토픽이미지·문화재청 제공
낙안읍성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만 관광지인 만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해요. 어른은 2000원, 초등학생은 1000원을 내요. 입장료는 낙안읍성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쓰인답니다. 성 안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날아간 듯한 느낌을 받아요. 흙길을 따라 작은 초가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서고, 양반이 살던 기와집들도 눈에 들어오거든요. 성곽 위에 오르면 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어요. 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성곽 길을 걸으며 성곽 아래 펼쳐진 마을을 바라보면 정말 딴 세상에 온 듯하지요. 마을로 내려와 골목길을 따라 구경하다 보면 맛있는 엿을 파는 가게나 아빠들이 좋아할 법한 주막(★)도 나온답니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중 하나는 동헌(★)이에요. 이곳에 들어가면 방망이를 들고 호령하는 사또와 형틀에서 곤장을 맞는 죄수 등의 마네킹이 있습니다. 동헌이 어떤 곳인지 금세 알겠지요? 옛날에 고을 수령(★)이 살면서 업무를 보던 곳이랍니다. 동헌 바로 옆에는 낙민관이 있어요. 낙안읍성에 관한 자료를 전부 모아놓은 전시관이지요. 낙안읍성의 역사와 출신 인물, 사람들이 쓰던 농기구와 생활용품 등이 소개되어 옛 사람들의 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답니다.

또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체험장에서는 짚공예, 목공예, 달구지 타기, 전통혼례와 다도(★), 천연염색 등을 경험할 수 있어요. 특히 매년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에 열리는 정월대보름 민속한마당 축제 등 이곳을 대표하는 축제가 열릴 때는 엄청난 인파(★)가 모인답니다. 축제 기간에 임경업 군수 추모제, 줄다리기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지거든요. 낙안읍성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사찰 송광사, 세계 최대의 연안습지 순천만자연생태공원 등이 있으니 같이 돌아보면 더욱 좋아요.


관아(官衙): 관리들이 모여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

주막(酒幕): 밥과 술을 팔며, 돈을 받고 나그네를 묵게 했던 집.

동헌(東軒):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고을 수령 등이 나랏일을 보던 중심 건물.

수령(守令):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을 다스리던 지방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

★다도(茶道): 차를 달여 손님에게 권하거나 마실 때의 예법.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이란 뜻으로, 수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

임후남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