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지금은 2014년, 우리나라는 4347년

입력 : 2014.01.10 05:46 | 수정 : 2014.01.10 09:02

예수 탄생한 해 계산한 신학자… 그해를 '서기 1년'으로 정했어요
2014년은 예수 탄생 2014년째인 해
단군이 고조선 건국한 해부터 세는 단기… 그래서 올해는 단기로 4347년이죠

새해가 밝은 지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달력에 적힌 '2014'라는 숫자가 낯설어요. 겨울방학이 며칠이나 남았을까 셈하며 달력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누나가 아는 체하며 한마디를 던졌어요.

"올해가 서기 2014년이니까 기원전 2333년을 더해 단기로는 4347년이네요."

"그렇지! 우리 딸이 아주 똑똑하구나!"

누나 말을 들은 아빠께서 크게 웃으며 칭찬하셨어요. 저는 누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요.

"서기와 단기라고요? 그게 뭐예요? 기원전은 또 무슨 말이에요?"

생각해 보니 작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올해는 2013년'이라고 여기며 살았네요. 도대체 작년과 올해는 언제부터 2013번째, 2014번째 해인 걸까요? 또 그 앞에 붙는 '서기'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서기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약자란다. 과거의 어느 해를 기준으로 해를 계산하는 방법을 기년법(紀年法)이라고 하는데, 서력기원은 서양에서 들어온 기년법을 뜻하지."

‘서기 1년’은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를 말해요. 올해는 그로부터 2014번째 해이지요.
‘서기 1년’은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를 말해요. 올해는 그로부터 2014번째 해이지요. /위키피디아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유럽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라는 신학자가 살았어요. 그는 교황의 명령으로 '부활제의 서'라는 책을 쓰면서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를 계산했대요. 그해가 바로 서기 1년이 되었답니다. 그러니까 서기 2014년은 그리스도가 탄생한 지 2014년째 되는 해를 뜻하는 것이죠. 그리고 서기 1년 이전의 해는 거꾸로 계산하여 '서기 전 몇 년' 또는 '기원전 몇 년'으로 세기 시작했답니다.

"역사책에서 어떤 연도 앞에 'BC'라는 글자가 붙은 것을 본 적 있지? 이는 'Before Christ(그리스도 탄생 전)'의 줄임말로, '기원전'이란 뜻이란다."

"그럼 '서기'는 영어로 어떻게 불러요?"

제 질문에 누나가 끼어들어 대답했어요.

"그건 'AD'라고 써."

"와~ 누나 정말 똑똑한데? 그럼 'AD'는 무슨 말의 약자야?"

"음, 그게 뭐였더라…. After… 아이, 잘 모르겠어!"

어라? 척척박사인 누나도 모르는 게 있었네요? 그때 엄마께서 나타나 누나를 도와주셨어요.

"'AD'는 'Anno Domini'라는 라틴어의 줄임말이란다.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이지."

와~ 엄마께서는 정말 모르시는 게 없네요. 누나와 저는 감탄하며 손뼉을 쳤어요. 그때 아빠께서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서기 1년은 진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가 아니라고 해.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는 기원전 4년이라는 설도 있고, 기원전 7년이라는 주장도 있단다."

아빠의 설명을 듣고 나니 갑자기 혼란스러워졌어요. 그리스도 탄생을 출발점으로 서기 몇 년을 세기 시작했는데,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가 서기 1년이 아니라고요? 하지만 이제 와서 서기 1년을 앞당길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쓰는 거라고 해요.

‘단기’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때를 기준으로 해를 계산하는 방법이에요.
‘단기’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때를 기준으로 해를 계산하는 방법이에요. /토픽이미지
"아니, 그럼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탄생 전(Before Christ)'에 태어난 게 되잖아요?"

누나와 저는 깔깔깔 웃었어요. 실제로 태어난 해보다 7년이나 늦게 출생신고를 한 아이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남보다 7년이나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하하하.

"요즘에는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서력기원을 공통으로 쓴단다. 그래서 서기 1년을 '그리스도 탄생의 해'가 아니라 그냥 '인류 공통의 해'로 보자는 의견도 있어.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서기 1년을 '공통 시대(Common Era)'라고 부르면서 'CE'로 줄여 쓴단다."

서기 대신 'CE'를 쓰면, 기원전도 'BC'가 아니라 'BCE(Before Common Era)'가 된답니다. 실제로 이웃 나라 중국에서는 우리처럼 서기라는 말을 쓰지 않고 '공원(公元)'이란 말을 쓴대요. '공공의 기원'이라는 뜻이니까 'CE'와 같은 생각이 깔린 거예요. 달력에 쓰인 '2014'라는 숫자에 이렇게 깊고 복잡한 뜻이 담겨 있었군요.

"참! 아까 누나가 말한 '단기'라는 것은 뭐야?"

"응, 그건 '단군기원(檀君紀元)'의 줄임말이야. 단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세운 때로부터 해를 세는 방법이지.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으니까 단기를 계산하려면 서기에다 2333을 더해야 해."

누나가 다시 또랑또랑하게 대답해 줬어요. 서기가 세계 여러 나라가 함께 쓰는 기년법이라면, 단기는 우리나라 사람끼리만 통하는 기년법이군요. 저는 부모님과 누나 앞에서 다부지게 말했어요.

"그럼 나는 올해부터 나만의 방법으로 해를 세야지."

그러자 엄마께서 반색하며 말씀하셨어요.

"어머, 우리 아들이 철드나 보네. 그럼 올해가 공부 열심히 하는 첫 번째 해겠지?"

"아니요. 용돈 많이 받는 첫 번째 해."

제 대답에 아빠와 누나가 크게 웃었어요. 엄마랑 저는 '톰과 제리'처럼 한참 쫓고 쫓겼답니다.


강응천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