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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실·다산 상징하는 물고기… 조선 후기에 많이 그렸죠

입력 : 2014.01.07 05:34 | 수정 : 2014.01.07 09:13
이향견문록에서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중인(中人) 이하 서민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이향견문록에서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중인(中人) 이하 서민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조선일보 DB
지금처럼 투명한 유리로 만든 어항이나 수족관이 없던 옛날에도 물고기는 꽤 인기 있는 볼거리였어요. 새·풀·나무처럼 관상용(★)으로 널리 사랑받았지요. 궁궐은 물론 세도(★)가 당당한 양반집에서도 정자와 연못을 만들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을 느꼈어요.

물고기는 옛 그림의 주요 소재이기도 했어요. 주로 잉어·숭어·방어·붕어·홍어·메기·송사리 등의 물고기를 게나 새우 등의 갑각류와 함께 그렸지요. 이렇게 물속에 사는 동물을 그린 그림을 '물고기 어(魚)' '게 해(蟹)' '그림 도(圖)'라는 한자를 써서 '어해도'라고 해요. 어해도는 조선 후기에 많이 그려졌으며, 섬세한 묘사 능력이 필요해 주로 화원(★)들이 많이 그렸어요. 장한종이라는 화원이 특히 어해도에 뛰어났지요. 조선 철종 때의 문인 유재건은 '이향견문록(★)'이란 책에서 장한종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어요. '장한종은 어려서부터 물고기와 게·자라 등을 사다가 비늘과 껍질을 자세히 살피며 세밀히 묘사했다. 그가 그린 물고기 그림은 사실과 너무 닮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장한종은 쏘가리·붕어·미꾸라지 등의 민물고기와 소라·조개·자라·게 등을 즐겨 그렸어요.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 능력을 인정받아 1795년(정조 19년) 김득신·이인문 등과 함께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제작에도 참여하였지요. 장한종의 화풍(★)은 아들 장준량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어요. 장준량 역시 물속에 사는 생물을 꼼꼼하고 자세하게 묘사하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선 어해도의 전통을 이어나갔지요. 그는 도화서의 화원으로 종2품 벼슬에 해당하는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중인들의 부러움과 양반들의 시샘을 사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옛 그림의 소재로 물고기가 자주 쓰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비들은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보며 권력을 좇는 대신 자연을 벗 삼아 청빈(★)한 삶을 사는 선비 정신을 되새겼어요. 여인들은 물속에서 사이 좋게 지내는 물고기처럼 금실이 좋기를 바라거나, 많은 알을 낳는 물고기처럼 아이를 많이 낳기를 기원했다고 해요.

장한종이 그린 어해도예요. 물고기가 정말 살아 있는 듯하지요?
장한종이 그린 어해도예요. 물고기가 정말 살아 있는 듯하지요? /조선일보 DB
하지만 사랑방(★)에 걸린 물고기 세 마리 그림은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였어요.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가 담겼지요. 중국 위나라에 동우라는 학자는 제자가 농사짓느라 바빠서 공부할 틈이 없다고 하자 '삼여(三餘)' 즉 세 가지 남는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라고 충고했대요. 세 가지의 남는 시간이란 한 해의 남는 시간인 겨울과 하루의 남는 시간인 밤, 그리고 농사일을 하지 못하는 비 오는 날을 말해요. '물고기 어(魚)'의 중국어 발음이 나머지 시간을 뜻하는 '여(餘)'와 같아 세 마리의 물고기를 보며 '삼여'를 생각하라는 뜻이었지요. 여러분도 혹시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진 않나요? 그렇다면 자투리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이켜보세요.


관상용(觀賞用): 두고 보면서 즐기는 데 쓰임. 또는 그런 물건.

세도(勢道): 정치상의 권세. 또는 그 권세를 마구 휘두르는 일.

화원(畵員): 조선시대 도화서에 소속된 궁중 화가 또는 직업 화가를 이르는 말.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 조선 후기 유재건이 편찬한 인물 행적기. 양반이 아닌 중인층 이하의 신분으로 각 방면에서 뛰어났던 308명의 삶과 업적을 기록했다.

화풍(畵風):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나 양식.

★청빈(淸貧):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함.

★사랑방(舍廊房): 집의 안채와 떨어져 있고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글을 읽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곳.

지호진 |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