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읍시다
"못생긴 아내가 여신으로 보일 수 있듯…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입력 : 2014.01.06 05:43
| 수정 : 2014.01.0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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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신예찬은 ‘바보의 신’을 통해 부조리한 시대상을 폭로한 책이에요. /위키피디아
우선 내가 왜 오늘 여러분 앞에 섰는지 말하려고 하니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교회 설교 들을 때처럼 귀를 기울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장터의 약장수들, 광대와 익살꾼들에게 귀를 기울이던 정도면 충분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여러분 앞에서 잠시 교수 흉내를 내고 싶어서입니다. 그렇다고 불필요한 고민거리로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여인들 사이의 입씨름이나 전하는 오늘날의 교수가 아니라 옛날의 연설가들을 흉내 내려 합니다. 이들의 관심은 신들과 영웅들의 공덕을 일컬어 기리는 칭찬 연설이었습니다. 오늘 연설은 헤라클레스나 유명한 정치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우신(愚神)'을 칭찬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라스뮈스가 쓴 '우신 예찬'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우신(愚神), 즉 바보 신은 자신을 칭찬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지요. 그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니 칭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런 나의 행동은 귀족들과 교수 무리의 고약한 버릇보다 훨씬 점잖다"고 자랑합니다. 바보 신이 앞으로 누구를 겨냥해 이야기를 이어갈지 짐작이 되지요?
아첨꾼들은 형편없는 귀족과 교수들을 신들과 나란한 자리에 세우며 모든 덕의 절대 모범이라고 칭찬합니다. 까마귀에게 공작새 깃털을 덧입히고, 시커먼 사람을 하얗게 분장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파리를 코끼리로 만들 정도로 과장된 칭찬을 늘어놓아요. 이렇게 칭찬받는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겸손한 체하면서도 공작새처럼 깃털을 활짝 펼쳐보이고 머리 볏을 꼿꼿이 세우며 뽐낸답니다.
여러분은 바보 신이 꼬집는 귀족처럼 겸손한 체하면서 자기 자랑을 일삼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혹시 여러분이 이런 모습인 적은 없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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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카로운 풍자 정신을 가진 에라스뮈스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인문학자였어요. /위키피디아
바보 신은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말합니다. 주홍과 노랑으로 대충 그린 그림인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최고의 명화라고 생각한다면, 진짜로 유명 화가의 그림을 비싸게 산 사람의 마음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평범한 그림을 산 사람의 행복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해요. 여러분은 행복에 대한 바보 신의 주장에 동의하나요?
궁정귀족들 대부분은 늘 아첨하고 비겁하며 멍청하고 천박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든 일에서 가장 앞서 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에 대해서만은 유독 겸손을 보이며 남에게 양보합니다. 그것은 바로 덕과 지혜를 기르는 일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덕과 지혜를 쌓는 일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단지 덕과 지혜를 상징하는 온갖 장신구로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하고 뽐내기만 할 뿐이지요.
설마 여러분은 열심히 배워 덕을 쌓고 지혜를 연마하기보다 겉모습을 꾸미는 것을 더 좋아하진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