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한국 설날은 음력, 일본 설날은 양력?
입력 : 2014.01.03 05:37
| 수정 : 2014.01.03 08:37
19세기 중반 日 쇄국정책 무너지자 이 기회 틈타 메이지 일왕 정권 잡아
이발소·교회 등 서양 문물 받아들이며 음력 폐지하고 설날도 양력으로 선포
이러한 개혁이 일본 근대화 당겼지만 침략전쟁 등 주변국에 상처도 입혔죠
새해 첫날은 대부분 나라에서 중요한 명절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정월 초하루(음력 1월 1일)를 설날로 지키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이날을 춘절(春節), 베트남에서는 뗏(Tet)이라고 부르지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은 예로부터 유교와 불교, 한자 등 공통적인 문화 요소가 많았어요. 벼농사를 짓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점도 아주 비슷하죠. 그래서 명절이나 절기도 유사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주변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양력 1월 1일을 '간지쓰(元日)'라고 부르며 한 해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일본의 명절은 언제부터 양력으로 바뀌었을까요?
1853년 일본의 한 바닷가에 미국 배들이 무역을 요구하며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움직이는 이 배들을 '흑선'이라고 불렀지요.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막부는 서양의 강한 군사력을 이길 방법이 없었어요. 결국 1년 후 미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의 쇄국정책(鎖國政策)이 무너졌습니다. 쇄국정책이란 다른 나라와 무역 등을 하지 않는 정책을 말해요. 이 일로 막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지요. 이때 12세기경 무사 정권인 막부가 들어서면서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일왕(日王) 세력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어요. 일왕은 막부를 제거하자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쿠데타에 성공했답니다.
1868년 1월 3일, 메이지(明治) 일왕은 정부와 함께 새로운 일본을 통치하겠다고 발표했어요. 700년간 권력을 잡았던 막부를 쫓아내고, 일왕이 통치하는 시대를 다시 연 것이죠. 사람들은 당시 16세였던 메이지 일왕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삼았습니다. 일왕의 이름을 따서 '메이지유신'이라고 불린 이 개혁은 헌법이 제정된 1889년까지 이어졌어요.
1853년 일본의 한 바닷가에 미국 배들이 무역을 요구하며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움직이는 이 배들을 '흑선'이라고 불렀지요.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막부는 서양의 강한 군사력을 이길 방법이 없었어요. 결국 1년 후 미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의 쇄국정책(鎖國政策)이 무너졌습니다. 쇄국정책이란 다른 나라와 무역 등을 하지 않는 정책을 말해요. 이 일로 막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지요. 이때 12세기경 무사 정권인 막부가 들어서면서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일왕(日王) 세력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어요. 일왕은 막부를 제거하자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쿠데타에 성공했답니다.
1868년 1월 3일, 메이지(明治) 일왕은 정부와 함께 새로운 일본을 통치하겠다고 발표했어요. 700년간 권력을 잡았던 막부를 쫓아내고, 일왕이 통치하는 시대를 다시 연 것이죠. 사람들은 당시 16세였던 메이지 일왕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삼았습니다. 일왕의 이름을 따서 '메이지유신'이라고 불린 이 개혁은 헌법이 제정된 1889년까지 이어졌어요.
- ▲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미키마우스의 모습이 신기하지요?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위).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을 개혁한 메이지 일왕 모습이에요(아래 왼쪽). 일본이 1871년부터 2년간 미국과 유럽에 파견한 이와쿠라 사절단 모습이에요(아래 오른쪽). /뉴시스·위키피디아
수도인 도쿄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어요. 서양식 단발머리가 유행하면서 이발소가 생기고, 벽돌로 만든 서양식 건물도 지어졌어요. 프랑스처럼 가스등이 밤거리를 수놓았지요. 마차와 인력거꾼들이 사람을 태워 나르고,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사람이 늘어났어요. 유행을 이끄는 멋쟁이들은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맥주를 마셨습니다. 돈가스와 소고기를 밥 위에 얹어 먹는 냄비 요리도 크게 유행했어요. 덴무 일왕이 불교 신앙에 어긋난다며 육식을 금지한 이후 1200년 만에 고기 요리가 유행하기 시작한 거예요. 일본인 사이에서는 체형(體型)도 서양 사람처럼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생겨났어요.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바로 무사 계급이었어요.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고, 무사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머리카락도 잘려나갔거든요.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그동안 누렸던 특권까지 사라졌지요. 이때 무사 계급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조선에 쳐들어가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이 등장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이와 더불어 일본에서는 일왕을 나라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전국 순회가 이어졌습니다. 행차 때마다 붉고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깃발이 걸리고,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충성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지요. 1889년에 만들어진 일본 제국헌법에서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일왕)이 통치한다"고 명시하며 일왕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만들었어요.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 등 아시아 각국을 침략하며 태평양전쟁을 주도했습니다. 메이지유신이 일본 근대화를 앞당긴 개혁임은 틀림없지만, 일왕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기반을 다지며 침략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에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어요.
지난해 12월, 일본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해 전 세계의 비난이 쏟아졌어요. 야스쿠니 신사는 원래 메이지 유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3588명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곳이에요. 이후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은 자그마치 250만명에 달하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문제는 그중에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A급 전쟁 범죄자 14명이 있다는 거예요. 야스쿠니란 이름은 '평화로운 나라'라는 뜻인데요. 정말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를 신(神)으로 섬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