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갔어요

왕관의 무게를 견뎌낸 헝가리 왕실의 여인들

입력 : 2014.01.02 05:45 | 수정 : 2014.01.02 09:04

[78] 헝가리 왕실의 보물展
왕관의 주인, 마리아 테레지아 女王
임신한 몸으로 말 타고 칼 휘두르며 조국 지키겠단 용기 보여줬죠
엘리자베트 황후 머리 스타일, 길게 늘어뜨려 별 모양 핀으로 장식
여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대요

그림1 - 헝가리의 신성한 왕관, 복제본 사진
그림1 - 헝가리의 신성한 왕관, 복제본.
동화 속에는 공주와 왕자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특히 '신데렐라' 등 결혼할 나이가 된 왕자가 신붓감을 찾는 내용의 동화가 많지요. 안데르센이 쓴 동화 중에도 초라한 옷차림으로 왕궁에 찾아와 자신이 이 나라의 왕자와 결혼하기로 한 공주라고 우기는 소녀 이야기가 있어요. 왕자의 어머니인 왕비는 소녀가 정말로 공주인지 알아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합니다. 소녀가 자는 침대 바닥에 완두콩 한 알을 놓고, 그 위로 스무 겹이나 되는 푹신한 요와 오리털 이불을 깔았어요. 그런데 다음 날 잠에서 깬 소녀가 이렇게 투덜거렸답니다. "침대 밑에 뭔가 딱딱한 게 들어 있는 것 같아서 한숨도 못 잤어요."

하하하, 굉장히 까다로운 소녀이지요? 왕비는 그 말을 듣고서야 소녀가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공주라고 확신했답니다. 공주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요?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왕족은 진귀한 요리를 먹고 부드러운 비단 이불에서 잠을 잡니다. 그뿐인가요?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화려한 보석으로 자신을 치장하지요. 또 여러 사람의 시중을 받으며 무엇 하나 불편한 점 없이 살아갑니다.

여러분도 왕자나 공주처럼 살고 싶다고요? 부러워하긴 아직 일러요. 왕족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막중한 의무도 있었답니다. 그게 무엇인지 헝가리 왕실의 보물을 보면서 함께 알아봐요.

나라마다 왕실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신성한 보물이 있습니다. 그림1에 나온 왕관이 바로 헝가리를 대표하는 보물이에요. 진품은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보관되어 있고, 이 왕관은 전시용으로 복제한 것이랍니다. 크기는 물론이고 꼭대기에 십자가가 비뚤어진 것까지 똑같이 만들었어요. 12세기부터 헝가리의 왕들은 대관식에서 이 왕관을 착용했습니다. 심지어 이 왕관을 쓰지 않고 왕이 된 자는 진짜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요.

이 왕관을 쓴 역대 왕 중에는 여왕도 있었어요. 그림2의 주인공인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에요. 그림 속의 여왕은 말을 타고 언덕을 넘어 서약을 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언덕은 국가를 상징한다고 해요. 여왕이 칼을 든 것은 외세의 침입에 굴하지 않고 조국과 시민을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말 위에 멋진 자세로 앉아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관식이 있기 몇 주 전부터 승마 연습을 했다고 해요. 임신한 몸이었는데도 말이지요.

왕족의 임무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자로서 명예를 지키는 일이에요.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 비겁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보다 굳건한 용기를 가져야 해요. 그래서 왕들은 칼을 높이 드는 동작으로 자신의 용기를 온 천하에 보여주곤 했답니다.

(사진 오른쪽)그림2 - 마르틴 판 마이텐스, ‘말을 탄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 18세기 중엽. (사진 왼쪽)그림3 - 아돌프 다우트하게, ‘대관식 예복을 입은 엘리자베트 황후’, 19세기 후반 사진
(사진 오른쪽)그림2 - 마르틴 판 마이텐스, ‘말을 탄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 18세기 중엽. (사진 왼쪽)그림3 - 아돌프 다우트하게, ‘대관식 예복을 입은 엘리자베트 황후’, 19세기 후반.

강인한 여왕의 모습을 보여준 마리아 테레지아에 이어 헝가리 왕실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여인을 소개할게요. 그림3을 보세요. 지금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하나의 왕실로 묶여 있던 시절,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동화 속 왕자님처럼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신랑 신부의 양쪽 집안이 처음으로 인사하던 날, 신랑은 신부가 아닌 신부의 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말았어요. 동생 엘리자베트는 아직 어렸지만, 언니를 대신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트 황후는 최고의 멋쟁이로도 유명했어요. 가냘픈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늘 궁전의 뜰을 산책하며 운동을 했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일이 없었답니다. 위로 틀어 올리기만 했던 왕비의 머리 스타일에서 벗어나 긴 머리를 늘어뜨려 별 모양 핀으로 장식하기도 했어요. 이 머리 스타일은 당시 여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지요. 사람들은 왕족의 행렬이 있을 때면 우아하고 멋진 엘리자베트 황후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했대요.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헝가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국이 되었어요. 그 결과 국토의 많은 부분을 잃고 말았지요. 과거의 화려한 시절을 간직한 헝가리 왕실 유물과 아름다웠던 엘리자베트 황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와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옛날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많았어요. 여러분은 위인전이나 역사책에서 본 국내외의 여러 왕 중 누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만약 여러분이 왕이 된다면 어떤 왕이 되고 싶은지도 함께 생각해 보세요.



국립고궁박물관 (02)3701-7500

이주은 교수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