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여행

일제가 만들었던 항구 도시, 지금도 옛 모습이 남아있어요

입력 : 2013.12.25 07:40

[62]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전라북도 군산의 옛 도심은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아요. 한때는 최고의 항구 도시로 꼽혔지만 개발이 멈추면서 옛모습 그대로 머무르게 됐거든요. 이곳을 여행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0~10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답니다.

우리나라는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었어요. 일본이 강요한 불평등한 조약이었지요. 이 조약에 따라 부산·원산·인천·목포 등이 항구를 개방해 일본 선박의 출입을 허용했어요.

군산도 강화도조약에 따라 1899년에 개항된 항구 도시입니다. 군산을 통해 일본인들은 국내 최대 곡창 지역인 호남과 충청의 질 좋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어요. 그러다 보니 군산에 사는 일본인 수도 증가해 개항 당시 77명에서 1930년대 중반 약 1만명으로 크게 늘었지요. 이렇게 일본인이 밀려들면서 군산에는 일본식 집이 많아졌고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도 들어섰어요. 조선은행, 군산세관, 여관 등 당시에 세워진 건물 170여 채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이때의 모습을 2011년에 문을 연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어요. 박물관은 부두 바로 앞에 있는데, 이 마을 이름은 쌀을 저장한다는 뜻의 '장미(藏米)동'이에요. 일제가 강제로 빼앗은 쌀을 보관한 창고가 즐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이곳을 통해 얼마나 많은 쌀이 일본으로 실려 나갔는지 짐작되지요? 이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가 볼게요. 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3층에 마련된 근대생활관입니다. 이곳의 주제는 '1930년 9월, 군산의 거리에서 나를 만나다'입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지요(왼쪽 사진). 전북 군산에 있는 빵집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성당 빵집이에요(오른쪽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지요(왼쪽 사진). 전북 군산에 있는 빵집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성당 빵집이에요(오른쪽 사진). /조선일보 DB·안호영 객원기자
근대생활관을 둘러보면 정말로 1930년의 어느 날 군산 시내를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군산 최고의 번화가였던 영동상가 일부를 재현한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홍풍행 잡화점'에서 당시에 사용하던 생활도구를 살펴볼 수 있고, 최고의 신발 가게였던 '형제고무신방'에서는 검정 고무신과 짚신, 일본인이 신던 나막신 모형을 볼 수 있어요. 또 그 시대 사람들이 탔던 인력거와 인력거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인력차방'도 있어요.

인력차방은 인력거꾼들이 손님을 기다리던 곳으로 주로 역(驛)과 경찰서 앞에 있었지요. 지금 지하철역 입구에 택시들이 서 있는 것과 비슷해요. 군산 최초의 사설 한국인 중학교 '영명학교'의 모습을 살필 수 있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장소로도 쓰였던 극장 '군산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볼 수 있답니다.

일본인들은 호남 지방에서 수탈한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선 철도를 만들었어요. 이를 재현한 '임피역'에서 당시 수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요.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고 이름조차 생소한 간이역이지만 일제 침략기에는 호남 지방에서 생산되는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 나르는 중요한 역이었다고 합니다. 임피역사는 1936년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문화재로 지정됐어요.

근대역사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박물관 안에 있는 느낌이 드네요. 조선은행, 일본 제18은행 등 옛 건물이 모여 있기 때문이에요.

일본 제18은행 건물은 이제 군산근대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답니다. 군산시는 옛 건축물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근대 문화 도시 조성 사업을 펼쳐 관심을 끌고 있지요. 군산을 가면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이 또 있어요. 바로 '이성당 빵집'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운영하던 빵집을 인수한 것으로 지금 남아 있는 빵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임후남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