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갔어요
우리나라에도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
[76] 예수와 귀먹은 양 展
서양에서 많이 그려진 '예수의 탄생', 한국에선 화가 김기창이 시도했어요
6·25전쟁으로 혼란했던 우리나라…
평화가 안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의 생애' 그림 30점 그렸죠
천사는 선녀, 동방박사는 정승으로 아기 예수는 색동옷을 입고 있어요
해마다 동지가 지나고 2~3일 후면 성탄절이 되어요. 예수의 생일이 정확하게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일 년 중 하루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 전후를 빛이 태어나는 날이라고 믿고 축제일로 삼았대요. 4세기쯤에는 로마의 주교가 이날을 예수의 생일로 택했다고 해요. 어둠의 힘이 물러가기 시작하고 빛의 힘이 커지는 날이라는 점에서 동지와 성탄절은 의미가 비슷하답니다.
서양에서는 많은 화가가 예수의 탄생 장면을 명화로 남겼어요. 그림 속에서도 아기 예수는 언제나 주변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빛으로 나타나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화가 김기창이 그린 그림으로 보여 드릴게요. 김기창은 어릴 적에 열병을 심하게 앓는 바람에 귀가 멀고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장애가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방해할 수는 없었어요. 어느 날 한국에 온 미국인 선교사는 그의 재능과 열의에 감동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예수는 어느 한 나라를 위해서 탄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의 모습을 본떠서 그려도 되지요. 당신도 한국의 성화를 그려보면 어떻겠습니까?"
이 글을 읽고 용기를 낸 김기창은 한국인 예수를 그려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때가 마침 6·25전쟁이 벌어져 우리나라가 아주 힘겨울 무렵이었거든요. 군산으로 피란을 가 있던 김기창은 빨리 우리나라에 전쟁의 어둠이 걷히고 평화의 빛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예수의 생애 30점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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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1. 김기창, ‘수태고지’, 1952~53, 비단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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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위)그림2. 김기창, ‘아기 예수의 탄생’, 1952~53, 비단에 채색. (사진 아래)그림3. 김기창, ‘동방박사들의 경배’, 1952~53, 비단에 채색.
그림 2는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이에요. 가운데 커다란 소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은 외양간인가 봅니다. 뒤쪽으로 조랑말도 있고, 모이를 먹고 있는 닭도 보이네요. 동네 아낙네들이 음식을 들고 찾아와 건강한 엄마와 아이를 보고 기뻐하고 있어요. 잔칫집처럼 흥겨운 축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군요.
그림 3은 귀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높은 벼슬에 있는 어르신 세 분이 멀리서 찾아와 진귀한 선물을 드리는 장면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이 문 바깥까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서 있는 것도 보이네요.
색동옷을 입은 아기 예수를 보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서양의 성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이런 그림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195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그림은 물론 외국인조차도 본 적이 드물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일상으로 그려낸 김기창의 성화가 한결 친근해 보였을 거예요. 우리나라 식으로 풀어내다 보니 본래 성서에 묘사된 장면이 조금 바뀌기도 했어요. 김기창의 그림 속에서 말구유가 외양간으로, 목자들은 아낙네들로, 동방의 박사 3인이 정승 3인으로 바뀐 것은 그런 이유랍니다.
성탄절에는 종교의 다름을 따지지 않고 많은 사람이 온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카드를 주고받곤 하지요. 김기창도 어서 전쟁이 끝나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런 그림들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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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02)395-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