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법전은 야만적?

입력 : 2013.11.22 05:44 | 수정 : 2013.11.22 08:43

3700여년 전 바빌로니아왕 함무라비
살기 좋은 땅 메소포타미아 최초 통일, 정의롭고 공평한 나라 만들려고 했죠
높이 2.25m 돌에 함무라비법전 새겨…
죄 지은 만큼 갚는 공포법 담았지만 과부·고아 배려하는 내용도 있어요

함무라비법전 비석 윗부분엔 태양신이 함무라비 왕에게 법전을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지요
함무라비법전 비석 윗부분엔 태양신이 함무라비 왕에게 법전을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지요. /Getty Images/멀티비츠
겨울이 다가오면서 야외보다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겨울철이면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층간 소음 문제로 많은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평소 이웃 간에 인사를 자주 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나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3700여년 전 바빌로니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한 왕이 있었어요. 바로 함무라비 왕입니다. 함무라비는 왜 이런 원칙을 만들었을까요?

함무라비는 바빌로니아의 여섯 번째 왕이에요. 바빌로니아가 위치한 메소포타미아는 주변에 큰 강이 흐르고, 넓은 평야로 이뤄져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어요. 이곳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농사를 짓고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최초로 이 지역을 통일했던 사람들은 수메르인이었답니다. 뒤를 이어서 다시 찾아온 혼란한 시기. 함무라비가 막 왕이 되었을 무렵에도 강한 나라들이 주변에 가득 있었어요. 그는 군사력을 기르고, 주변 국가들과 동맹을 맺거나 배신을 하면서 이 지역을 통일해 나갔어요. 마침내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전체 지역을 통일한 나라가 되었어요.

함무라비왕은 전쟁이 끊임없는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왕이 되고 싶었어요. 상업과 농업을 발달시키고, 언어를 통일하고, 조세제도와 군사 제도를 변화시켰어요. 무엇보다도 넓은 제국 안의 다양한 문제를 공평하게 처리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영토는 넓고 왕의 몸은 하나이니 그럴 수 없는 노릇. 그래서 각지에 왕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해 줄 관리를 파견했어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왕이 재판하는 것처럼 똑같은 기준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지요. 당시 일어나고 있던 문제들, 예를 들면 도둑질·폭행·사기·가족 관계·의료사고 등 분야별로 해결 기준을 마련했어요. 이것을 '함무라비법전'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법전은 너비 65㎝, 둘레 1.9m, 높이 2.25m의 큰 돌에 당시에 사용하던 쐐기문자로 새겼어요.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신전에 놓았답니다.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궁금하지요?

비석의 상단에는 태양신으로부터 법전을 받는 함무라비왕의 모습이 있어요. 뿔 모양모자를 쓰고 왕좌에 앉아 이글거리는 태양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가 바로 태양신이에요. 함무라비는 그 앞에서 공손하게 예를 갖추고 서 있지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 그림을 보면 '신이 내려준 법이니 꼭 지켜야지' 생각했을 거예요. 그림 아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태양신 사마슈가 이 세상에 빛을 준 것처럼 백성의 행복을 위해 이 세상에 정의를 주노라. 그리하여 강자가 약자를 못살게 굴지 않도록, 과부와 고아가 굶주리지 않도록, 평민이 관리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에 있는 바빌론 유적지예요. 바빌론은 함무라비왕 때 크게 발전했답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에 있는 바빌론 유적지예요. 바빌론은 함무라비왕 때 크게 발전했답니다. /AFP
그리고는 282개의 법 조항과 맺음말이 이어져요. 법 조항에는 '자식이 아버지를 때리면 그 손을 잘라버린다'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리면, 그 사람의 뼈도 부러뜨린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리면, 그의 이를 부러뜨린다' '황소나 양, 나귀나 돼지 혹은 배를 훔쳤을 경우, 그것이 신전의 것이라면 30배로 갚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10배로 갚아야 하며, 만일 갚을 수 없으면 처형당한다' 등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내용이 있어요. 이처럼 똑같이 복수하거나 돈으로 보상하도록 되어 있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속담처럼 말이에요. 이런 법을 '탈리오의 법칙' 혹은 '복수법'이라고 하는데요, 함무라비법전은 복수법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 만들었다면서 왜 이렇게 잔인하게 만들었을까 의아하지요?

그런데 사실은 일부 내용만 보았기 때문이에요. 함무라비법전은 재산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잔인한 신체 형벌에 관한 내용은 20여건에 불과해요. 과부나 고아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고요. 당시에는 감옥이 없었기 때문에 저지른만큼 똑같이 당하거나 재산으로 물어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렇게 판결함으로써 더 큰 복수를 막을 수 있었지요. 만약 이런 법전이 없었다면 누가 재판을 하느냐에 따라 더 큰 형벌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따뜻한 배려가 담긴 법이었답니다. 함무라비가 죽은 후 바빌로니아 왕국은 급속도로 약해졌어요. 함무라비법전은 약탈 문화재가 되어 세계 여러 곳을 떠돌다가 지금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함무라비법전을 만든 따뜻한 정의는 로마법대전, 나폴레옹법전을 거쳐 또 다른 모습으로 지금도 살아있어요. 만약 여러분이 친구와 다툼이 생겼다면 어떻게 해결하는 게 가장 정의로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공미라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