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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술 배워와 만든 우리 종이, 나중에 중국이 수입해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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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륜이 만든 종이는 식물섬유가 주성분이어서 글씨 쓰기에 편리했지요. /위키피디아
종이처럼 휘어지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 곧 등장한다고 하니 인류의 개발 능력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종이는 가벼울 뿐 아니라 말거나 접어서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그래서 예부터 기록을 남기기 위한 훌륭한 재료로 사랑받아왔지요.
그렇다면 종이가 처음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1900년 전인 서기 105년에 중국의 채륜이 오늘날과 비슷한 종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그전에 인류는 대나무나 비단, 양피지(★), 진흙 판 등에 문자를 기록했지요. 중국에선 채륜의 종이 이전엔 풀솜(★)이나 마(★)를 펴서 만든 종이를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만든 종이는 너무 얇고 약한 데다 표면도 고르지 않아 사용하기가 불편했어요.
중국 후한의 환관(★) 출신으로 상방령(★)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던 채륜은 이를 안타깝게 여겼어요. 그래서 나무껍질, 낡은 천, 고기잡이 그물 등 여러 재료를 가루처럼 잘게 부스러뜨리고 합해 새로운 종이를 만들어낸 거예요. 채륜의 종이는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고, 접었다 펼 수 있어 휴대하기 편했어요. 사람들은 이 종이를 '채후지(蔡侯紙)'라고 이름 붙이고, 이전의 종이와 구별하며 채륜의 공을 찬양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종이를 만들고 사용했을까요? 중국의 종이 제조법이 우리나라로 전해진 시기는 대략 서기 300~600년 사이로 짐작해요. '일본서기'에는 610년에 고구려 담징이 일본에 종이와 먹의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기록이 나와요. 이것으로 미루어 우리 민족이 그 이전에 종이 만드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불국사 석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두루마리 종이에 목판 인쇄를 한 경전이에요. 석가탑이 지어진 때가 751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번역된 때가 704년이니 이것을 인쇄한 종이는 그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어요.
또한 755년(경덕왕 14년)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에는 종이 만드는 기술과 만든 곳의 지명, 그리고 종이를 만든 사람 등이 기록돼 있지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종이를 발명한 중국이 우리나라 종이를 수입해 간 것이에요. 우리가 중국보다 더 좋은 종이를 만들었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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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에요. 한지에 찍어낸 것이지요.
여러 가지 식물 원료를 갈아 얇게 펴서 종이를 만든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주로 닥나무 껍질을 두들겨 종이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든 종이를 한지라고 불러요.
중국 송나라 손목은 계림유사에서 '고려의 닥종이는 흰빛이 아름다워 모두 좋아하며 이를 일러 백추지라 한다'고 한지의 우수성을 칭찬했어요. 명나라 문헌에도 '고려의 종이는 누에고치로 만들어서 종이 색깔이 비단처럼 희고 질기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먹어 좋다. 이런 종이는 중국에는 없는 것으로 진귀한 물품이다'라고 적혀 있지요.
물론 한지는 누에고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닥종이로 만든 것이에요. 그런데 누에고치로 만든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우리 조상의 한지가 비단처럼 곱고 촘촘하면서도 매끄러웠다는 뜻이지요.
★양피지: 양의 가죽을 얇게 펴서 약품 처리를 한 뒤 표백해 말린 것.
★풀솜: 실을 켤 수 없는 허드레 고치를 삶아서 늘여 만든 솜.
★마(麻): 뽕나뭇과의 한해살이 풀로 삼이라고도 함.
★환관: 황제나 임금을 모시던 사람으로 생식기능이 없는 남자를 말함.
★상방령: 궁중에서 무기를 제작, 감독하거나 궁중에서 필요한 물건을 제작, 관리하던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