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전화·인터넷 없던 시절에도 스파이가 있었다?
입력 : 2013.11.15 05:41
| 수정 : 2013.11.15 09:12
고구려 평양성 지키던 을지문덕 장군… 수나라에 거짓 항복한 뒤 적진 정탐
적들의 지친 모습 확인하고 반격해 살수대첩에서 백만 대군 물리쳤어요
스파이, 남 정보 캐내는 나쁜 일이지만 나라 지키는 멋진 첩보원도 있답니다
"엄마 정말 너무해요!"
누나의 볼멘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무래도 심하게 꾸중 들었나 봐요. 모범생 누나가 뭘 잘못했기에 혼이 나고, 또 얼마나 억울하기에 엄마께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요?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학원 갔다 온다면서 친구랑 영화 보러 간 게 잘한 거야? 그러면서 전화기는 왜 꺼 놨어!"
그럼 그렇지. 어쩐지 요즘 누나가 좋아하는 스타가 어떤 영화에 출연한다고 들떠 있더라고요.
"누가 잘했대요? 하지만 저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 저도 인권이 있는데 왜 온종일 엄마한테 위치 추적을 당해야 해요?"
아하, 엄마가 레이더망을 벗어나 사라진 누나를 정보망을 총동원해 잡아온 것이군요. 영화 속 첩보전을 보는 기분이에요.
"그래, 누구나 인권은 있어.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지."
아빠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화제를 바꾸셨어요.
누나의 볼멘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무래도 심하게 꾸중 들었나 봐요. 모범생 누나가 뭘 잘못했기에 혼이 나고, 또 얼마나 억울하기에 엄마께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요?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학원 갔다 온다면서 친구랑 영화 보러 간 게 잘한 거야? 그러면서 전화기는 왜 꺼 놨어!"
그럼 그렇지. 어쩐지 요즘 누나가 좋아하는 스타가 어떤 영화에 출연한다고 들떠 있더라고요.
"누가 잘했대요? 하지만 저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 저도 인권이 있는데 왜 온종일 엄마한테 위치 추적을 당해야 해요?"
아하, 엄마가 레이더망을 벗어나 사라진 누나를 정보망을 총동원해 잡아온 것이군요. 영화 속 첩보전을 보는 기분이에요.
"그래, 누구나 인권은 있어.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지."
아빠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화제를 바꾸셨어요.
- ▲ 유럽 주요 국가를 도청해온 것으로 알려진 미국 국가안보국(NSA) 사무실이에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치열한 첩보전이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지요. /Corbis 토픽이미지
"신문에서 봤어요. 미국에선 우리나라 정부 전화까지 도청했대요."
신이 나서 제가 끼어들었죠.
"아직 우리나라까지 도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어. 하지만 미국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의 지도자들을 도청한 건 사실인가 봐. 정말 무서운 세상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과학기술이 발달한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니까요. 차라리 전화, 인터넷이 없던 옛날이 더 안전했던 것 같아."
아빠 말씀에 엄마가 맞장구를 치자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는 누나가 딴죽을 걸었어요.
"아니에요.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옛날에도 도청 같은 건 있었대요. 남의 집 밑에 항아리를 파묻고 그 속에 들어가서 엿듣기까지 했대요. 옛날이라고 엄마 같은 사람들이 없었겠어요?"
엄마가 "요 녀석이!" 하면서 꿀밤을 먹이려 하자 누나는 메롱 하면서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
"항아리를 파묻고 그 안에서 엿듣는다고? 대단한걸요."
나는 누나 말에 흥분해서 아빠 엄마께 옛날 스파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어요.
"옛날 스파이라….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면서 스파이 활동을 한 마타하리란 여자가 있었지. 우리나라에서도 배정자라는 여자 스파이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나라가 망하는 데 한몫했었고…."
"당신은 왜 스파이 하면 여자만 떠올려요? 그 여자들은 다 못된 남자들 때문에 인생을 망친 거라고요!"
엄마께서 볼멘소리를 했어요. 그러자 방에 들어갔던 누나가 쪼르르 달려나오면서 엄마 편을 들었답니다.
"맞아요. 007 영화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 같은 사람도 스파이와 다름없는데, 남자라고 멋있는 인물로 꾸민 거잖아요. 하여간 남자들이 문제라니까요!"
누나 말을 듣고 유명한 스파이 영화를 떠올려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아빠도 머쓱했는지 말을 돌리셨어요.
"남의 정보를 몰래 캐내는 건 나쁜 일이지만, 역사 속에는 더 나쁜 자를 혼내주기 위해 스파이 전략을 쓴 사람도 있지. 아빠가 볼 때 가장 멋진 첩보원은 우리나라 사람이었어."
"누군데요?"
"그건 바로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야."
- ▲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대를 무찌른 살수대첩을 재현한 모형이에요. /전쟁기념관 제공
을지문덕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하루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다 졌대요. 사실은 진 게 아니라 져주는 척한 거죠. 적은 신이 나서 마구 밀고 내려오다가 제 풀에 지쳐 버렸어요. 그러자 을지문덕은 홀로 적진으로 찾아가 항복하러 왔다고 말했어요. 적의 우두머리 장군은 그 말을 믿고 을지문덕과 어떻게 고구려의 항복을 받을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러는 동안 을지문덕은 적군의 사정을 모두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적들은 무거운 장비를 메고 먼 길을 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지요. 이렇게 수나라군의 상태를 엿본 을지문덕은 자신 있게 밀어붙여 적군 30만 명을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몰살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답니다.
아빠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모두 손뼉을 쳤어요. 을지문덕은 정말 대담하고 지혜로운 첩보원이었군요.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위치 추적하지 마세요." 누나가 엄마께 애교를 부리자 엄마는 꿀밤을 먹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을지문덕처럼 거짓 항복하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약속 진짜 지키는지 두고 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