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배 타고 세계 일주… 며칠 걸릴까?

입력 : 2013.11.08 05:58 | 수정 : 2013.11.08 08:50

美 여기자, 이집트 수에즈운하 이용해 72일 6시간 11분 만에 세계 일주 성공

지중해와 홍해 연결하는 '수에즈운하' 1869년 완성된 160㎞짜리 인공 바닷길
아프리카 돌지 않고 유럽·아시아 연결… 이동 거리 줄면서 항해 시간도 줄었죠

"지구는 옛날에는 넓었지만 지금은 작아졌어. 지금은 100년 전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으니까. 어떤가? 80일 동안, 즉 1920시간 동안 말이야. 다시 말해 11만5200분 이내에 세계를 일주하는 조건으로 2만파운드를 걸겠네."

1873년에 발표된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포그는 이렇게 2만파운드 내기로 세계 일주를 시작하지요. 영국~프랑스~수에즈운하~인도~말레이시아~홍콩~일본~미국 샌프란시스코~뉴욕~영국 런던의 경로를 따라 결국 성공했다고 하는데요. 과연 당시에 배를 타고 80일 만에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게 가능할까에 대해 의견이 갈렸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 여기자가 72일 6시간 11분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해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배로 오가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지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배로 오가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지요. 고대 이집트인들의 꿈이 이뤄진 셈이에요. /Corbis 토픽이미지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쓴 쥘 베른은 소설의 아이디어를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면 80일 만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는 잡지 기사에서 얻었다고 해요. 물론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지금은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세계를 돌 수 있지요.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줄여 준 수에즈운하를 만들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요?

수에즈운하는 이집트 동쪽에 있는 인공 수로(水路)입니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해 동양과 서양을 잇는 바닷길이에요. 두 바다를 연결해 바닷길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라고 해요.

그 후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 16세기 베네치아 상인,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18세기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계획을 세웠답니다. 하지만 지중해와 홍해는 수면 높이가 차이 나고 큰 암석들이 많아 당시 토목 기술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죠.

1859년 이집트의 무함마드 사이드 파샤 의 지지를 받은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드디어 수에즈운하 공사를 시작했어요. 그는 운하가 만들어지면 이집트의 국제적인 지위가 올라가고,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지요. 공사에 필요한 비용은 주식을 발행해서 마련했고요. 수에즈운하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의 주식을 프랑스와 이집트 정부가 나누어서 소유하는 방식이었지요. 공사가 끝난 후엔 운하 회사가 통행료를 받으며 관리하다가 99년 후에 이집트 정부에 넘겨주기로 약속했어요.

하지만 공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강제 노동에 시달린 이집트 노동자들이 영양실조와 전염병, 지나친 피로로 목숨을 잃어갔지요. 공사비는 계속 늘어나 정부의 재정도 더욱 어려워졌죠. 결국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운하의 주식을 영국에 팔아넘겨 버렸지요. 운하를 만들어 이집트의 밝은 미래를 열겠다고 꿈꾸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어요. 오히려 이집트를 호시탐탐 노리던 영국에 간섭할 기회만 만들어 준 셈이니까요.

수에즈운하 개통식을 묘사한 그림이에요(위). 수에즈운하 개통 전·후 항로 변화.
수에즈운하 개통식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Corbis 토픽이미지
1956년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운하를 이집트의 소유로 선포할 때까지 이집트 정부에서는 수에즈운하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답니다. 이처럼 외국의 도움을 받아 이뤄가는 국가사업에 대해선 늘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공사 시작 10년 만인 1869년에 드디어 수에즈운하가 완성되었어요. 지중해의 포트사이드 항구와 홍해의 수에즈 항구를 연결하는 세계 최대 인공 수로가 모습을 드러낸 거예요. 총길이 160여㎞에 이르는 운하를 배가 통과하려면 15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규모가 컸지요. 세계 각국 대표와 유명 인사들이 운하 개통식에 참석해 축하했고요. 이를 위해 작곡가 베르디는 에티오피아 공주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오페라 '아이다'를 작곡했다고 해요. 공연은 때맞춰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운하의 개통이 얼마나 큰 행사였는지 짐작이 가지요?

이 바닷길 덕분에 동양과 서양을 오가는 경로가 부쩍 짧아졌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갈 때 아프리카를 빙 돌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영국 런던에서 인도의 뭄바이까지 가려면 2만1400㎞나 가야 했던 것이 수에즈운하 개통 이후엔 1만1472㎞로 줄어들었어요. 유럽과 인도를 오가는 길이 무려 1만㎞나 짧아진 것이니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에요. 거리가 단축돼 시간은 물론이고 항해에 필요한 비용도 줄었지요. 운하 공사에 사용된 기술은 이후 세계 각지 하천 공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요.

온난화는 우리가 사는 지구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쳤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어요. 북극의 빙하가 녹아 북극해를 통과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새로운 뱃길이 생긴 셈이지요. 이 바닷길을 따라 이동하면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오갈 수 있어요. 최근 우리나라 선박도 이 길을 따라 시범항해를 무사히 마쳤답니다. 새로운 북극 바닷길 시대가 열린 것이에요.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경로가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지요?

공미라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