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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치마 어원은 행주대첩이 아니래요
입력 : 2013.10.29 09:12
행주는 식기나 식탁, 조리대 등을 훔치거나 씻을 때 쓰는 작은 헝겊을 말해요. 쓰이는 데가 많아 주방 청소의 일등 도우미로 꼽히지요. 그럼 행주치마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부모님이 부엌일을 할 때 치마 위에 덧입는 짧은 치마를 뜻한답니다. 우리 조상은 부엌일을 하다가 물 묻은 손을 닦거나 그릇의 물기를 닦을 때, 또는 뜨거운 솥뚜껑을 들어 올릴 때 행주치마를 이용했어요. 오늘날 행주치마는 옷에 물이 묻거나 오물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입는 앞치마를 일컫는 말이 되었지요.
그런데 행주치마가 행주대첩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행주대첩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꾼 3대 전투 중의 하나에요. 조선에 불리하던 분위기가 3대 전투 승리를 계기로 유리하게 바뀐 것이지요. 대첩(大捷)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이에요.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2월 행주산성에서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과 왜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어요. 동이 틀 새벽 무렵부터 3만여 명에 달하는 왜군은 여러 겹으로 행주산성을 포위하고, 사방에서 공격을 이어갔어요.
그런데 행주치마가 행주대첩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행주대첩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꾼 3대 전투 중의 하나에요. 조선에 불리하던 분위기가 3대 전투 승리를 계기로 유리하게 바뀐 것이지요. 대첩(大捷)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이에요.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2월 행주산성에서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과 왜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어요. 동이 틀 새벽 무렵부터 3만여 명에 달하는 왜군은 여러 겹으로 행주산성을 포위하고, 사방에서 공격을 이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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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민속촌에서 행주치마를 두른 여성이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있어요(위 사진). 사적 제56호로 지정된 행주산성에서 한강의 방화대교가 바라보인답니다(아래 사진). /토픽이미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에요. 왜냐면 행주치마와 행주산성은 행주대첩이 일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말과 이름이기 때문이지요. 행주치마라는 말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보다 훨씬 전인 1517년 조선 중종 때 이미 등장했어요. 당시 어문학자 최세진이 쓴 '사성통해(四聲通解)'에 나왔거든요. 그로부터 10년 뒤에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도 같은 말이 나오지요. 이 책에선 행주를 말포(抹布)라고 풀이하고 있어요. '닦는 천'이라는 뜻이에요. 즉, 손에 묻은 물을 훔치거나 그릇 따위를 닦는 천 조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책에서 '쵸마'라고 표기한 말은 치마를 일컫는 말로 짐작하고 있고요. 그러니 행주치마라는 말이 행주산성이나 행주대첩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고 볼 수 없겠죠? 행주산성에서 행주라는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나오는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고려 초기에 이미 나온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일까요? 행주산성의 '행주'와 행주치마의 '행주'가 음이 같아서 그 어원(★)도 같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역사적 사실이나 구체적 자료, 과학적 방법 없이 낱말의 형태나 소리, 뜻의 우연한 유사성(★)으로 어원을 설명하려는 것을 민간어원설이라고 해요. 듣다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연관성이 없는 두 낱말의 관련성을 억지로 찾다 보니 엉터리인 경우도 많아요. 행주치마가 행주대첩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이야기처럼 말이에요.
★전세(戰勢): 전쟁, 전투나 경기 따위의 형세나 형편.
★공적(功績): 노력과 수고를 들여 이루어낸 일의 결과.
★어원: 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
★유사성: 서로 비슷한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