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갔어요

닮은 그림… 표절일까 모방일까

입력 : 2013.10.24 09:04

[73] 모방의 미학 展

표절은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 공부 위해 참고하는 것은 모방이죠
아버지 그림 보고 따라 그린 윤덕희, 배경에 변화를 줘 새로운 작품 탄생…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 창조했어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미술관에 가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이름난 예술가들의 작품 앞에 앉아 똑같이 따라 그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 오는 것은 도둑질과 마찬가지라고 들었는데 이상하네요. 그들은 왜 다른 사람이 한 것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남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 와서 마치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을 '표절'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공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참고하는 것은 '모습(模習·모방을 통한 학습)'이라고 해요.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에게는 그림을 배우러 오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멀리서 그를 무작정 찾아와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요. "소용없어요. 여기서 오래 기다린다고 해서 제자로 받아주는 것은 아니에요." 미켈란젤로의 조수가 줄을 선 사람들에게 슬쩍 귀띔해줍니다. "우선 열심히 익힌 대로 그림을 그려서 우리 선생님에게 보내세요."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다고 여기면, 미켈란젤로는 답장 대신 자신이 습작한 것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내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받았어!" 그림을 받은 학생은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고, 완전히 자기 것이 될 때까지 수천 장을 따라 그렸어요. 그리고 가장 잘 된 것을 골라서 다시 미켈란젤로에게 보내지요. 학생의 그림이 마음에 들면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습작 중 다른 하나를 또 보내 배우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절의 의미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초보자는 대가의 작품을 본보기로 하여 그것을 본뜨는 일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방은 배우는 과정에서 너무나 당연했고, 오직 문제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의 것을 본받을까' 하는 것이었지요. 스승이 도달한 예술의 경지에 올라가 본 후에야 비로소 언젠가 스승을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요.

작품 1~4.
작품1작품2를 비교해보세요. 윤두서와 그의 아들 윤덕희는 말을 탄 인물을 그렸는데, 말 탄 인물의 자세가 매우 비슷하네요. 아마도 아들이 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말 탄 인물은 닮았지만 그림의 배경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군요. 왼쪽에 절벽 같은 바위가 있고, 그 사이로 소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드리워져 있어요. 윤두서의 그림에서는 인물이 중심이 되지만 윤덕희의 그림에서는 풍경이 주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배움을 위해서만 모방이 쓰였던 것은 아니에요. 작품3작품4에서 보듯, 왕실에서 사용하는 예술품들을 모방한 물건이 많이 만들어졌는데요. 왕실의 고급스러운 물건을 가지고 싶은 일반인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3번은 구름 위에 떠 있는 용을 그려 넣은 항아리인데, 궁중의례를 위해 쓰던 것이에요. 궁중 물건에 그려진 용 무늬나 용 그림은 임금님의 하늘 같은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4번은 왕실의 물건을 흉내 내어 만든 항아리예요. 용 그림이 왕실 항아리보다 한결 자유롭게 그려져 있네요. 일반 백성이 쓰는 용 무늬 항아리에서 용은 왕이 아니라, 나쁜 운을 막고 행운을 불러오라는 염원을 담은 동물입니다. 의미가 달라진 것이지요.

표절이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오는 것이라면, 모방은 그것을 빌려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저기에서 정보가 쏟아지고 지식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어디까지가 모방이고 어디서부터 표절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 요즘엔 모방이라는 낱말 자체가 언뜻 나쁜 뜻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옛것을 본뜨는 과정은 중요한 단계랍니다. 창조는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것에서 갑자기 샘솟아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미 있던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이해하고, 새롭게 엮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함께 해봐요]

여러분이 따라 그리고 싶은 작품을 골라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베껴보세요. 이제 원작을 본보기로 삼아 여러분의 개성이 담긴 그림을 그려보세요. 원작을 여러분이 어떻게 이해했고,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표현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02)3277-3152
이주은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