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쑥쑥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 물시계는 자격루예요

입력 : 2013.10.22 08:49
1920년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는 자기가 쓴 희곡에 등장하는 인조인간을 '로봇(robot)'이라고 불렀어요. '강제로 일하다'라는 뜻이 담긴 체코어를 변형해 만든 말이에요. 이때부터 사람과 비슷한 모습과 기능을 지닌 기계장치, 스스로 작업하는 능력을 갖춘 기계장치들이 '로봇'으로 불리기 시작했지요.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장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었어요. 대표적 예가 조선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와 현종 때 송이영이 만든 자명종이에요.

백성이 편안하게 생활하도록 하고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대왕은, 여러 책을 읽던 중에 중국의 소송이라는 사람과 회회인(★)이 스스로 종을 쳐서 시각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절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라! 우리 조선도 자동 물시계가 있으면 경점지기(★)앞에서 밤낮으로 기다렸다가 눈금을 읽어야 하는 불편도 없을 텐데.'

그래서 세종대왕은 장영실에게 자동 물시계를 만들라고 명령했어요. 장영실은 정인지, 정초 등이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중국의 물시계와 이슬람 물시계를 비교하면서 이천, 김조 등과 힘을 모아 '자격루'라는 새로운 물시계를 만들었어요. 세종 16년인 1434년이니 지금으로부터 580여년 전이지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복원한 혼천시계예요(왼쪽 사진). 국보 제229호로 지정된 창경궁 자격루예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복원한 혼천시계예요(왼쪽 사진). 국보 제229호로 지정된 창경궁 자격루예요. 중국의 물시계보다 조금 늦게 나왔지만 규모가 크고 구조가 정밀해 훌륭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지요(오른쪽 사진). /신현종 기자·문화재청 제공
이제 조선왕조실록 현종 10년(1669년)의 기록 중 일부를 소개할게요. '홍문관이 물의 힘으로 돌아가게 만든 혼천의와 자명종을 올렸다. 앞서 상(★)이 이민철에게 명해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혼천의를 만들게 하고, 홍문관으로 하여금 맡아 감독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이민철이 만들어 올린 것이다. 또 송이영에게도 자명종을 만들어 올리게 하였던 것이다.' 조선은 1631년 인조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 서양 과학 관련 서적과 천리경(★), 자명종 등의 물건을 얻어온 뒤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어요. 1664년 현종은 송이영과 이민철에게 새로운 혼천의를 만들 것을 명하였어요.

임금의 명령에 따라 이민철은 효종 때 김제군수 최유지가 물의 힘을 이용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든 혼천의를 개량해 더욱 정밀한 혼천의를 제작했어요. 송이영은 추를 시계장치의 동력으로 이용한 기계식 천문시계 자명종을 만들었고요. 자명종은 원래 서양의 기계시계를 보고 저절로 종이 울린다고 하여 중국에서 붙인 이름이에요. 당시 천문학자 송이영은 기계식 시계장치에 혼천의를 결합해 하루의 시각과 천체의 움직임을 동시에 알 수 있는 혼천시계를 만든 것이지요. 이를 이민철이 만든 혼천의와 구별하기 위해 자명종이라고 부른 것이고요.

특히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는 서양의 기계식 시계와 동양의 전통적인 시계 제작 기술이 합쳐진 발명품이에요. 영국의 과학자이자 아시아 과학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조지프 니덤은 "조선의 혼천시계는 시계 역사상 매우 독창적인 유물이다. 세계의 유명 과학사 박물관들은 반드시 이것의 복제품을 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회회인:
보통 아랍인이나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족인 위구르인을 말함.

★경점지기: 자격루를 만들기 전에 세종 때 궁궐에서 쓰던 물시계.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어 5경으로 정해 알려줌.

★상: 임금을 높여 부르는 말.

★천리경: 두 개 이상의 볼록 렌즈를 맞추어서 멀리 있는 물체가 크게 보이도록 만든 물건. 망원경을 말함.
지호진 |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