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그리스 유물, 영국에 가야 볼 수 있다?

입력 : 2013.10.11 08:53

그리스 대표 문화유산 파르테논 신전… 영국 외교관 엘긴이 저택 꾸미기 위해 신전의 조각상 253점을 뜯어 갔죠
영국 의회, 이를 구매해 박물관 전시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약탈 문화재…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추석, 미국 LA카운티박물관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종묘에서 훔쳐간 문정왕후의 어보를 되돌려준다는 것이었죠. 어보는 왕이나 왕비가 돌아가신 후에 만들어서 종묘에 바친 도장을 말하는데요, 주로 용이나 거북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도난당한 문화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혜문 스님은 메릴랜드 국가기록원에 있는 미국 국무부 보고서를 찾아냈다고 해요. 이처럼 도난품으로 인정되면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에 관한 협약'에 따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간의 합의가 필요하고, 협약의 내용을 강제로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큰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지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의 문화유산입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아테네 여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었지요. 당시 최고의 건축가 익티노스가 설계하고,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조각상으로 장식했지요. 기둥의 윗부분과 삼각형 모양의 지붕 장식 내부, 건물의 기둥 안쪽 등 건물 외벽 상단에는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대리석 조각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의 파르테논은 폐허에 가까운 모습으로 뼈만 앙상한 기둥으로 남아 있어요. 그 많던 대리석 조각상들(마블스·Marbles)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영국박물관에 있는 그리스 파르테논 조각상 중 일부예요.
영국박물관에 있는 그리스 파르테논 조각상 중 일부예요.‘ 엘긴 마블스’로 불리고 있지요. 그리스는 이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영국에 요구하고 있어요. /Getty Images 멀티비츠
그리스의 역사와 파르테논 신전의 운명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처음에 신전이었던 이곳은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교회가 되었어요. 오스만제국(현재의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이슬람교의 사원으로 사용되었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678년 베네치아와 전쟁 중에는 건물이 파손되면서 많은 조각상이 부서졌어요.

1799년 토머스 브루스 엘긴이 오스만제국의 영국 외교관으로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엘긴은 자기 집을 그리스풍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그래서 외교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파르테논 신전을 스케치하고 석고상의 본을 떠도 좋다는 첫 번째 허가장을 받았지요. 차츰 욕심이 생긴 그는 1801년부터 10여 년에 거쳐 조각상 253점을 강제로 뜯어서 영국으로 가져갔답니다. 파르테논 신전에 남아있던 조각상 중 상태가 양호한 거의 모든 작품에 해당하는 양이었지요. 그는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영국에 가져가도 좋다는 두 번째 허가장을 받았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엘긴은 두 번째 허가장의 원본을 제시하지 못했어요. 이 허가장이 없으면 도둑질한 것과 차이가 없음에도 말이에요.

영국으로 가져간 조각상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인적 사정으로 빚에 쪼들려 파산한 엘긴은 영국 정부에 이것들을 구입하라고 권했어요. 1816년 영국 의회는 대리석 조각상들의 구입을 위한 회의를 열었지요. 석고상을 무단으로 뜯어 온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는 의견과,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니 돈을 주고 사서라도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지요. 결국 찬성 82표, 반대 30표로 구입을 결정했어요. 헐값에 사들인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석고상들은 지금도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1832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리스는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인 석고상들을 돌려받기를 원했어요. 불법으로 가져간 문화재를 원래의 위치인 그리스로 되돌려달라고 영국에 요구했지요. 하지만 영국 측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우며 반환을 거부했어요. "합법적으로 얻은 예술품이라 반환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이미 영국과 세계 공동의 유산이 되었다. 최신의 시설과 과학적인 관리를 통해 최고의 상태로 보존할 능력이 있는 영국에서 보관하는 것이 옳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조각상들을 영국으로 가져간 토머스 브루스 엘긴이에요(왼쪽 사진).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에요. 이곳의 수많은 조각상이 영국으로 실려갔지요(오른쪽 사진).
그리스의 파르테논 조각상들을 영국으로 가져간 토머스 브루스 엘긴이에요(왼쪽 사진).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에요. 이곳의 수많은 조각상이 영국으로 실려갔지요(오른쪽 사진). /위키피디아, Getty Images 멀티비츠
현재 그리스는 훌륭한 시설을 갖춘 뉴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세우고 영국이 유물들을 되돌려주기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만약에 도둑이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을 몰래 훔쳐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그 물건이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것이라면? 당연히 돌려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미국·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중국 등 해외 여러 나라에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세계를 떠돌고 있는 우리 문화재, 이제는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공미라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