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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 쓰던 매화틀은 매화 꽃병?

입력 : 2013.10.01 09:09

조선시대 궁궐의 어느 처소(★)에서 새앙머리(★)를 한 어린 여자아이들이 모여 어느 중년(★) 여인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었어요.

"이것의 이름은 매화틀이다.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

새앙머리 여자아이들은 궁궐에 갓 들어온, 아직 정식 나인(★)이 되지 못한 나이 어린 수습(★) 나인들이었어요. 새앙머리를 하여 생각시라고 불렀지요. 생각시들을 가르치는 중년 여인은 지밀상궁 중 한 명이었어요. 지밀은 지극히 은밀하고 비밀스럽다는 뜻으로 왕과 왕비가 살던 곳을 부르는 말이에요. 이곳에서 왕과 왕비를 모시는 궁녀가 바로 지밀상궁이지요.

궁궐 중심부엔 신하들이 볼일을 볼 뒷간이 없었지만, 중심에서 떨어진 곳엔 있었어요. 경복궁에는 뒷간이 28곳 있었다고 해요
궁궐 중심부엔 신하들이 볼일을 볼 뒷간이 없었지만, 중심에서 떨어진 곳엔 있었어요. 경복궁에는 뒷간이 28곳 있었다고 해요. /Getty Images/멀티비츠

"매화틀은 매화를 담는 통이다. 이제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겠느냐?"

"매화를 넣은 통이라면 꽃병이옵니까?"

어느 생각시의 물음에 상궁은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어요.

"매화는 궁중에서 임금님의 뒤를 부르는 말이다."

"뒤라면 그것! 그러면 매화틀은 임금님의 변기군요!"

매화틀이 임금님의 변기라는 말에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어요.

조선시대에 왕과 왕비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침전(★) 한편에 사각형 장막을 둘러치고 매화틀에 앉아서 볼일을 보았어요. 그러니까 매화틀은 이동식 좌변기인 셈이지요. 매화틀을 매우틀 또는 매회틀이라고도 불렀어요. 매우틀의 '매우(梅雨)'는 임금의 대변을 '매화'로, 소변을 '비'로 빗대 생긴 말이지요. 한편으로는 매회라는 재를 미리 뿌려두어 매회틀이라고 부르기도 했대요. 'ㄷ'자 모양으로 생겼고, 높이가 약 30㎝쯤인 나무틀이었다고 해요. 윗면엔 직사각형 구멍이 있고, 빨간 우단(★)으로 나무틀 위를 감쌌어요. 틀 밑에는 구리 그릇을 놓아 서랍처럼 밀어 넣거나 뺄 수 있도록 돼 있었지요.

조선시대 왕이 쓰던 변기 '매화틀'이에요. 여기에 담긴 용변을 의원에 보내 왕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살폈지요
조선시대 왕이 쓰던 변기 '매화틀'이에요. 여기에 담긴 용변을 의원에 보내 왕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살폈지요.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임금이 대변을 보고 나면 이를 담당하는 나인이 임금의 뒤처리를 해주고, 변을 본 그릇은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끼워 넣었어요. 왕과 왕비의 대변은 왕실 의료기관 내의원으로 가져가 검사했어요. 건강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기 위해서였죠.

그렇다면 궁궐에서 생활하던 다른 신하들은 볼일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곳이나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들을 만나는 장소 등 궁궐 중심부에는 뒷간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궁궐의 중심과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짓거나 집채를 둘러싸고 있는 행각(★)의 일부에 뒷간을 설치해 두었지요. 궁녀, 내시, 노비, 군인 등 궁궐에서 살거나 머물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볼일을 해결했고요. 경복궁에는 뒷간이 28곳, 창덕궁과 창경궁에는 21곳이 있었다고 해요.


★처소:
사람이 살거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

★새앙머리: 궁중에서 상궁이 되기 전 어린 궁녀의 머리 형태.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덩어리지게 잡아맨 후 댕기를 드린다. 생머리라고도 함.

★중년: 청년과 노년 사이의 나이. 곧,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나인: 고려·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왕과 왕비의 시중을 든 정5품 상궁(尙宮) 이하의 궁인.

★수습: 학업이나 실무 따위를 배워 익힘.

★침전: 임금의 침실이 있는 집.

★우단: 거죽에 고운 털이 돋게 짠 비단.

★행각: 궁궐 또는 절 등에서 주가 되는 집채의 둘레를 둘러싼 방.
지호진 |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