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독일 총리는 왜 고개를 숙였나

입력 : 2013.09.27 09:11

이곳은 다하우 강제수용소

독일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나치당은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 생체실험 등 비인간적 만행 저질렀죠
과거 잘못 사과한 메르켈 총리처럼 역사에 대한 감사와 책임 느껴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요

추석 연휴 온 가족이 함께 차례를 지냈나요? 각지에 흩어져 살다 한자리에 모이니 모두 보름달만큼이나 반가움이 차올랐을 거예요. 물론 이렇게 모이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왔겠지요. 명절이 되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을 가리켜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자주 불러요. 그만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지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어서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민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이 계셔요.

그런데 우리처럼 민족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또 있어요. 독일 히틀러가 이끈 나치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살해당한 유대인들이에요.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치를 피해 숨어 지내다 결국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지요.

유대인은 이스라엘 사람을 말해요. 단순히 이스라엘 국민이나 민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기원전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졌을 때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교인들을 포함하는 말이지요. 유대인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해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알려져 있지요. 실제로 그동안 노벨상을 탄 사람들의 3분의 1 정도가 유대인이라고 해요.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심리학자 프로이트도 유대인이랍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다하우(Dachau) 나치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꽃을 바치고 묵념하고 있어요.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다하우(Dachau) 나치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꽃을 바치고 묵념하고 있어요. 그는“독일인 대다수가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있다”며 과거 역사를 반성했지요. /AP 뉴시스
과거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여겼어요.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이 많은 유럽에서 어려움을 겪곤 했어요. 십자군 원정이 일어났을 때에도, 흑사병이 유럽을 뒤덮었을 때에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요. 특히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독일 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더럽힌다는 인종차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는 1933년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유대인과 독일인 사이의 결혼을 금지했어요. 게토라는 특별한 지역을 정해놓고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이사하도록 강요했어요.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통행이 금지되고, 외출할 때에는 모자와 두건을 써야 했어요. 그리고 삼각형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 놓은 '다윗의 별'을 달아 유대인이라는 것을 표시하게 했어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당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모아서 6개 수용소에 강제 이주시켰어요. 가장 유명한 곳이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예요.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입구에는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문구가 있어요. 사실은 아무리 일을 해도 자유로워질 수 없는 곳이었어요.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은 똑같이 생긴 줄무늬 죄수복을 입고, 머리카락도 강제로 밀어야 했어요. 안경, 구두, 가방, 인형 등 모든 소지품은 나치에게 빼앗겼어요. 그리고 강제 노동과 지독한 배고픔, 참혹한 추위와 끔찍한 더위,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에 시달려야만 했어요.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샤워실로 위장한 독가스실에서 죽어갔지요. 탈출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거예요. 간혹 철저한 감시를 피해 빠져나온 사람도 이중으로 된 철조망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어요.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400만~600만명 정도가 독일 나치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해요. 이것을 홀로코스트(Holocaust·짐승을 통째로 불에 구워 신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뜻의 그리스 어에서 유래한 말)라고 부르고 있어요.

수용소로 쓰였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박물관 입구에‘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문구가 남아 있어요.
수용소로 쓰였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박물관 입구에‘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문구가 남아 있어요. /Getty Images 멀티비츠
지난 8월 2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다하우 강제수용소 추모관을 방문했어요. 그는 "이곳은 독일이 인종·종교·성별 등을 이유로 사람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데 얼마나 극단적으로 치달았는지 경고하고 있다"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사과했어요. 그는 이렇게 과거 역사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이 모두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라고도 했죠. 독일 대통령도 프랑스의 마을을 방문해 과거 독일이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고 해요. 자기가 직접 저지른 일이 아니지만, 오늘날의 독일 정치인들은 역사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중앙 우체국에서는 9월 한 달 동안 우편물의 날짜 도장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찍고 있다고 해요. 이렇게 특별한 날짜 도장은 일본이 과거에 우리 민족의 어린 소녀들을 끌고 가 저지른 온갖 못된 짓에 대한 사과를 재촉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 역사에 대한 감사와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독일 총리의 사죄(謝罪) 연설처럼, 일본도 진심으로 과거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 우리 모두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에 동참할 수 있을 거예요.

공미라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