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쑥쑥 역사

나쁜 기운 막는 상상의 동물 '불가사리',
궁 지키려 곳곳에 새겼대요

입력 : 2013.09.10 09:20
'죽일 수 없다'는 뜻의 한자어 '불가살이(不可殺伊)'에서 이름이 유래한, 재생 능력이 뛰어난 불가사리는 바다에 사는 별 모양 동물만을 부르는 이름은 아니에요. 우리 조상은 쇠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특이하게 생긴 동물을 불가사리라고 불렀지요. 몸은 곰 같고, 발과 발톱은 호랑이와 닮았고, 코는 코끼리의 코, 눈은 무소 또는 코뿔소의 눈, 꼬리는 황소의 꼬리에 쇠톱같이 날카로운 이빨 등 여러 동물의 모습이 합쳐진 생김새를 하고 있어요.

괴물도 아니고 그렇게 생긴 동물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요? 불가사리는 실존한 동물이 아니라 상상과 전설 속의 동물이에요. 용이나 해치처럼요. 조선 후기의 학자 조재삼이 편찬한 '송남잡지'라는 책에는 "어떤 괴물이 있었는데, 쇠붙이를 거의 다 먹어버려 죽이려고 하였으나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불가살(不可殺)'이라고 이름하였다. 불에 던져 넣으면 죽지도 않고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어서 인가(人家)로 날아들어 집들이 또한 다 불에 타버렸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더불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실려 있어요.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이에요(왼쪽 큰 사진). 불가사리가 새겨져 있답니다(가운데 작은 사진). 불가사리는 곰 같은 몸, 코끼리의 코 등 여러 동물이 합쳐진 모습이라고 해요(오른쪽 사진).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이에요(왼쪽 큰 사진). 불가사리가 새겨져 있답니다(가운데 작은 사진). 불가사리는 곰 같은 몸, 코끼리의 코 등 여러 동물이 합쳐진 모습이라고 해요(오른쪽 사진). /문화재청 제공·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고려 말에 한 중이 여동생의 남편에게 밥풀을 비벼서 만든 벌레만 한 작은 짐승과 부적 한 장을 주었다. 그 짐승이 집 안을 기어다니며 바늘을 시작으로 젓가락, 숟가락 같은 작은 쇠붙이를 먹더니 몸이 점점 커졌다. 그 짐승은 방을 나가 호미, 괭이, 솥 등 큰 쇠붙이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더 큰 동물로 변하더니 칼이나 창 같은 무기까지 고을의 쇠붙이라는 쇠붙이는 다 먹어치워 결국 집채보다 더 큰 괴물로 변했다. 나라에서는 그 짐승을 잡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 괴물은 잡히지도 죽지도 않았다. 포졸들이 불화살을 쏘자 그 괴물은 죽기는커녕 불이 붙은 채 나라 안을 돌아다녀 나라 안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나라에서는 불가사리를 없애는 사람에게는 벼슬과 큰 상을 내린다는 방을 붙였다. 그러자 중에게서 불가사리를 받았던 남자는 중에게서 받은 부적을 불가사리의 몸에 붙였고, 불가사리는 그동안 먹은 쇠를 모두 쏟아내고 사라졌다.'이와 함께 고려 말의 승려인 신돈이 자기가 먹다 남은 밥알을 뭉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젊은 과부가 키웠다는 이야기가 민담으로 전하기도 해요.

그런가 하면 조선 선조 때 권문해가 펴낸 '대동운부군옥'이라는 책에는 불가사리가 '상상의 동물로 악몽과 요사(★)스럽고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기록돼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조선의 으뜸 궁궐인 경복궁에서 불가사리를 볼 수 있어요. 근정전 서북쪽 인공 연못에 세운 경회루 난간에는 여러 동물이 돌로 조각돼 있는데, 그중에 불가사리가 있어요. 자경전 십장생 굴뚝과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 굴뚝에도 불가사리가 새겨져 있고요. 경회루 난간의 불가사리 조각상에는 불가사리가 불을 잡아먹는다고 여겨 화재를 막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 십장생 굴뚝과 아미산 굴뚝의 불가사리는 굴뚝을 통해 사악한 기운의 침입을 막으려는 뜻에서 새겨진 것이지요.


★요사(妖邪):
요망하고 간사함.
지호진 |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