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읍시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올바른 관계는
'정의와 애정'에 달려있다

입력 : 2013.09.09 09:08
※다음은 존 러스킨이 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의 원문 중 일부입니다. 위의 글을 읽고 다음 ( )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써 넣으세요.


원래 고용주와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거나 상반된다는 것도 일반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그 어느 것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그 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얻는 것은 항상 양쪽에 이익이 된다. 하지만 이익을 분배하는 단계에서는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손해가 될 수도 있고,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 낮은 임금을 지급하여 종업원이 병약해지거나 의기소침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결코 고용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또한 너무 많은 임금을 지급하여 그 때문에 고용주의 이윤이 줄어서 사업 확장에 지장이 생기거나 또는 사업을 안전하게 자기 뜻대로 경영할 수 없게 되면, 그것도 결코 종업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중략)

나는 (①)의 균형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 (①)라는 말의 의미 속에는 애정-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품고 있는 그런 애정까지 포함되어 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올바른 관계 및 그들의 최고 이익은 궁극적으로 모두 (①)와 애정에 달려 있다.(중략)

19세기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상가 존 러스킨이에요.
19세기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상가 존 러스킨이에요. /Corbis 토픽이미지
군인의 직업은 국민을 〈수호하는〉 것이다. 목사의 직업은 국민을 〈가르치는〉 것이다. 의사의 직업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법률가의 직업은 국민 사이에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다. 상인의 직업은 국민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본분은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란 다음과 같다. 군인은 전장에서 자기가 맡은 자리를 떠나기보다는 차라리… 의사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자신의 임무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목사는 거짓을 가르치기보다는 차라리… 법률가는 부정을 묵인하기보다는 차라리… (②)은… (②)이 〈죽어야 할 경우〉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②)에게도 그것은 중요한 문제다. 진실로 죽어야 할 때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②)의 직분은 국민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것이다. (중략) 바꿔 말하면 (②)은 자기가 파는 물건의 품질과 그것을 획득하거나 생산하는 수단을 철저히 이해하고, 물건을 완벽한 상태로 생산하거나 획득하여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장 싼 가격으로 분배하기 위해 모든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중략)

가령 어떤 군함의 함장이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인지 또는 부득이한 사정 때문인지 자기 아들을 일반 수병의 지위에 놓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함장은 부하 수병들에게도 자기 아들을 다루듯이 대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공장주가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인지 또는 부득이한 사정 때문인지 자기 아들을 일반 노동자의 지위에 두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공장주는 부하 노동자들에게도 자기 아들을 다루듯이 대해야 한다.(중략) 그리고 난파했을 때 선장은 배를 떠나는 마지막 사람이 되어야 하고, 식량이 떨어졌을 경우에는 마지막 빵 한 조각도 부하 선원들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장주는 상업상의 위기나 곤경에 빠지면 부하 노동자들과 함께 어려움을 겪고, 노동자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정답:
①정의 ②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