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내 친구

"노동 시간이 다른데 왜 같은 품삯을 주는 겁니까?"

입력 : 2013.09.09 09:09

[46]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하루 품삯으로만 사는 노동자 때문에 포도원 주인은 일한 시간 달랐어도 일꾼들에게 똑같은 보수 줬어요
이 일화 통해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 이득만 중요시한 기존 경제학 비판, 약자 위한 '정의의 경제학' 제시했죠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Ruskin)이 쓴 이 작품은 제목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포도원의 비유로 시작합니다.


#이야기 하나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에서 일할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9시쯤 장터에 나가 보니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과 하루 품삯을 '1데나리온'으로 약속하고 일을 맡깁니다. 주인은 정오와 오후 3시, 오후 5시에 나가서 데려온 이들에게도 같은 일거리를 줬지요. 오후 6시쯤 날이 저물자 관리인은 주인의 뜻대로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기 시작합니다. 오후 5시쯤부터 일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품삯은 1데나리온이었습니다. 오후 3시와 12시에 온 사람들은 물론, 아침 9시에 온 이들도 1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했던 일꾼들은 주인에게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1시간쯤 일한 저들과 우리를 어떻게 똑같이 대할 수 있습니까?" 주인이 답했습니다.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나와 1데나리온을 약속하고 일하러 오지 않았습니까?"(기독교 성경 참조)

포도원 주인은 왜 모든 일꾼에게 같은 삯을 치른 것일까요? '그렇게 계약했기 때문'입니다. 오전 9시에 온 일꾼과도, 오후 12시·3시·5시에 온 일꾼과도 각각 그렇게 약속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모두에게 같은 품삯을 주기로 한 걸까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으로, 그만큼의 돈이 있어야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했대요. 이런 의미에서 이를 '공평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라고 부르기도 해요.

[신문은 선생님]
/그림=이병익
존 러스킨은 이 비유를 들어 기존 근대경제학이 경제행위의 주체인 인간의 '머리'만을 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간의 합리적·이성적인 면만 고려해 모든 것을 이해관계로 풀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기존 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철저한 계산에 따라 비용(cost)은 줄이고, 이윤(benefit)은 늘리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행위자들 간에 이해관계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 득실의 경제학이 된다는 거예요. 그는 기존 경제학이 너무 이성적으로 기울고 있음을 경계했고, 그런 경제가 지속될 때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렵다고 봤어요.

러스킨은 인간의 '머리'와 함께 '가슴'도 보는 경제학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가슴이란 '가족적인', '연민'을 의미합니다. 더 넓은 범위에서 경제행위자를 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노동자와 공장주 사이에 대립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존 경제학에서는 양적인 문제로, 수요와 공급의 문제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패러다임에서는 공산주의가 대안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어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태를 가정하면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가 당연한 일이니까요. 반면 러스킨은 이들의 대립 관계를 연대장과 부하의 관계, 또는 함장과 승조원의 관계로 풉니다. 배가 가라앉을 때 함장은 승조원들을 모두 탈출시킨 뒤에 탈출하지요. 연대장 역시 부하들을 목숨보다 아껴 보호하고요. 만약 공장주가 노동자를 이런 태도로 대한다면 노사 문제 해결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기존의 경제학이 '득실의 경제학'이라면, 러스킨의 경제학은 '정의의 경제학'이 됩니다.


#이야기 둘


고대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는 귀족과 평민으로 나뉜 사회를 조화롭게 다스리기 위해 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세력 있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아버지 같은 사랑과 관심으로 아랫사람을 돌볼 임무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파트리키안'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이지요. 평민들도 귀족들에게 반감을 품기보다는,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사랑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고요. 귀족과 평민은 각각 보호자(파트론)와 피보호자(크리엔트)로 불렸고, 파트론은 경제적으로 크리엔트를 도우는 것은 물론 법정에서 크리엔트의 변호인이 돼줬어요. 크리엔트도 충실하게 파트론을 섬겼다고 해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참조).

로마를 세운 것으로 알려진 로물루스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해요.
로마를 세운 것으로 알려진 로물루스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해요. /Corbis 토픽이미지
어머니와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집에 빵이 한 조각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이 서로를 적대 관계로 보나요? 그렇지 않지요. 러스킨은 경제행위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에게 적개심을 품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폭력이나 교활한 책략을 쓰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양보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경제행위를 할 때 포도원 주인처럼 공평하게 나눈다거나 다른 이에게 양보하기는 쉽지 않지요. 그렇기에 러스킨은 '상인의 도'를 말합니다. 군인이나 변호사, 의사나 목사가 자신의 직업에 맞는 도를 따르는 것처럼 상인들도 도를 갖춰야 한다는 거예요. 경제에도 상도와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이 말한 것처럼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어야 해요. 오늘날 기업인들에게 적용하자면 '고객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조선의 임상옥과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19세기 인물이지만 경제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제에 대한 이들의 시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줍니다.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Marshall)은 "경제학자는 냉철한 머리,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정확히 바라보는 이성과 더불어 사람을 보는 따뜻한 마음가짐까지 가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부터 이런 마음을 품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고전 1분 퀴즈]

1. 오늘의 고전을 쓴 존 러스킨은 기존 근대경제학이 인간의 ( )만을 보고 있다고 비판하며, ( )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2. 그는 군인·변호사·의사·목사가 직업에 맞는 도를 따르듯, ( )도 ( )의 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답:
1.머리, 가슴 2.상인

안진훈 | MSC브레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