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영국의 여왕은 왜 '대통령'이 아닐까

입력 : 2013.09.06 10:45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상징적인 존재, 정치적 결정은 의회에서 하고 있어요

1689년 의회에서 공동 왕으로 추대한 메리와 윌리엄3세, '권리장전'에 서명… 의회의 권리 인정한다는 내용이었죠
그 후 의회 중심 정치 체제가 되었어요

영국,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 스페인, 네덜란드, 일본, 캄보디아, 사우디아라비아.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차이는 있지만, 아직 왕과 왕비가 존재하는 국가들이에요. 이 중에는 왕이 직접 통치하는 왕정을 실시하는 나라도 있고, 통치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상징적 존재이며 통치는 하지 않아요. 정치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중심으로 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지요. 이러한 영국 정치의 전통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영국은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의회가 다른 나라보다 앞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1215년 존 왕은 귀족들의 권리를 재확인한 문서인 '대헌장(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서명했어요. 대헌장 이후 귀족·성직자의 힘이 강해져 의회 탄생으로 이어졌어요. 의회정치의 전통은 큰 자부심이었겠지요? 17세기, 평생 독신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가 죽고 친척인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차례로 왕위를 계승했어요. 이때부터를 스튜어트 왕조라고 불러요. 하지만 그들은 스코틀랜드와는 다른 영국의 의회를 이해하지 못했답니다. 의회를 무시하고 탄압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던 찰스 1세는 결국 왕위에서 쫓겨나 처형당하지요. 혁명에 가담한 의회 의원 대부분이 청교도였기 때문에 '청교도 혁명(Puritan Revolution, 1640~1660)'이라고 해요.

영국 런던에 있는 버킹엄 궁전이에요.
영국 런던에 있는 버킹엄 궁전이에요. 영국 왕실의 사무실이자 영국 국왕의 주거지로 쓰이고 있지요. /Corbis 토픽이미지
의회파를 이끌던 올리버 크롬웰(Cromwell)은 왕정을 폐지하고 호국경(護國卿)이 돼 공화정을 실시했어요. 이때가 영국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화정이 시행된 시기예요. 당시 영국은 해상무역으로 경제가 발전했지만, 크롬웰의 독재에 시달려야만 했어요. 그는 성서에 따르는 청빈한 생활을 주장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혹했거든요. 크롬웰이 병으로 죽자 사람들은 프랑스에 도망가 있던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를 다시 왕위에 앉혀요. 다시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된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새 왕의 인품은 훌륭하지 않았어요. 찰스 2세는 아버지를 죽게 한 의원과 판사들을 찾아내 처형했어요. 이미 죽은 크롬웰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에 형벌을 내리기도 했지요. 가톨릭을 믿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고, 여전히 의회를 무시하는 정책을 폈어요. 왕의 권력은 신이 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주장하며, 태양왕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을 부러워했지요.

찰스 2세를 이은 제임스 2세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노골적으로 가톨릭에 편중된 정책을 펴서 강한 불만을 샀지요. 특히나 가톨릭교도인 왕비가 아들을 낳자, 가톨릭교도가 아닌 국민의 불만은 극에 달했어요. 왕자가 자라서 왕이 된다면 계속 이렇게 차별받고 살 것 같아 걱정이 된 거죠.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혹은 정치적인 탄압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기도 했어요. 불만을 지닌 의원들은 제임스 2세의 딸로 네덜란드에 있던 메리 공주와 남편 오렌지 공(公) 윌리엄 3세를 불러들여요. 그 소식을 들은 제임스 2세는 왕비와 어린 왕자를 데리고 프랑스로 도망쳤답니다.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는 공동으로 왕위를 계승했지요. 이렇게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이룬 정권 교체를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1688~1689)'이라 불러요. 자부심이 느껴지는 이름이지요? 새로운 왕은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는 문서를 인정했어요. 의회와 백성의 권리를 인정하고, 국왕이 누리던 잘못된 특권은 포기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후부터 영국은 '왕은 있지만 통치하지 않는 나라'의 전통을 가지게 돼요. 왕은 상징적으로 존재하며,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법에 따라 통치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발전한 거죠. 이 법은 자유와 평등을 기본으로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1953년 6월 대관식을 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어요.
1953년 6월 대관식을 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어요.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왕위를 계승했고, 올해 6월 대관식 60주년을 맞았답니다. /Getty Images 멀티비츠
영국의 정치적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왕과 의회의 다툼과 화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왕정에서 공화정, 다시 왕정이 됐다가 결국 왕정과 공화정을 절묘하게 섞은 현재의 정치 형태가 됐으니 말이에요. 물론 영국에서도 "왕실은 불필요하게 예산을 낭비할 뿐 전혀 필요하지 않다"라는 폐지론이 있어요. 하지만 영국 왕실은 여전히 많은 영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아마도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품위 있는 생활로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기 때문이겠죠. 지난 7월 영국 왕실에서 태어난 로열 베이비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마운트배튼-윈저'는 태어나자마자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됐다고 해요. 미래의 영국 왕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공미라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