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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물에 발 담그는 '탁족', 선비들이 즐겼던 피서법이었죠
입력 : 2013.09.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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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문장가 소동파는 뱃놀이하며 글을 지었어요. 조선의 선비들도 소동파처럼 선유를 하며 더위를 피했지요. /구자호 기자
무더운 어느 여름날 서울 남산골의 한 양반이 하인에게 말했어요. "요즘 날이 더워도 너무 덥군. 여봐라, 마당쇠야. 아랫마을 허 참봉(★)댁에 가서 내가 탁족이나 하러 가잔다고 전해라." 더위를 식히러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탁족하러 가려나 봐요. 함께 탁족을 하러 가려는 사람을 참봉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그 사람 역시 양반일 테고요.
조선시대 양반들은 양반 체면에 상민(★)들처럼 아무 데서나 윗옷을 훌러덩 벗고 등목하거나 멱을 감을 수 없었어요. 양반들이 가장 즐겼던 피서는 인적이 드문 계곡의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것이었지요. 이를 '탁족(濯足)'이라고 해요. 양반들이 경치 좋은 계곡을 찾아 물에 발을 담그고, 시를 읊으며 산수를 즐기는 모임을 탁족회(濯足會)라고 하고요. 발만 물에 담그는 것이 뭐가 그리 시원할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분이고 발바닥은 몸의 신경이 집중돼 있대요. 그래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지요. 또 탁족은 정신 수양에도 좋았어요.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그면 어느새 나른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게 돼 맑은 정신을 갖는 데 도움도 줬지요.
서울 양화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던 한 선비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다른 선비를 찾아가 물었어요. "더위에 지친 몸도 쉬고 머리도 식힐 겸 오늘은 선유나 하러 가면 어떠한가?" 이 선비가 친구와 하자던 선유(船遊)라는 놀이는 바로 뱃놀이에요. 탁족과 함께 양반들이 즐겼던 또 다른 피서이지요. 강에 배를 띄우고 강가 경치를 감상하며 흥취(★)에 따라 시를 짓고 낚시도 하며 한때를 보내는 거예요. 배를 타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기도 하고, 이동하며 주위 풍경에 취하고, 배에 악공과 기녀를 함께 태워 음악과 춤을 즐기기도 했어요. 배에서 직접 고기를 잡아 먹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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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이 그린‘송도기행첩’중‘태종대’그림이에요. 선비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피하고 있네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지체: 집안이나 개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참봉(參奉): 조선 시대에 여러 관아에 속했던 가장 낮은 지위의 종9품 벼슬
★상민(常民): 양반이 아닌 보통 백성을 이르던 말.
★흥취(興趣): 흥과 취미를 아울러 이르는 말.
★기망(旣望): 음력 매달 열엿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