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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할 이상 채우면 새는 술잔 '계영배', 욕심 경계하라는 뜻이죠

입력 : 2013.09.04 11:27
헤론의 분수 이야기를 들으니 '계영배'라는 술잔이 생각나요. 둘 다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발명품이랍니다. 사이펀은 U자 모양으로 굽은 관으로, 한쪽은 길고 다른 한쪽은 짧은 모양이에요. 이 관을 이용하면 액체가 든 병이나 통을 기울이거나 움직이지 않고도 높은 곳의 액체를 낮은 곳으로 옮길 수 있어요. 대기압을 이용해 높은 곳의 액체를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원리이지요.

계영배(戒盈杯)는 경계할 계(戒), 가득 찰 영(盈), 잔 배(杯). 즉 '가득 참을 경계한다'라는 뜻을 지닌 술잔이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술잔과 비슷하지만, 어떤 술이든 이 잔에 7할(★) 이상의 술이나 액체를 채우면 밑바닥 구멍으로 모두 술술 새어나가요. 7할이 되기 전까지만 따르면 일반 잔처럼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실 수 있죠.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지 말라는 가르침과 함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은 술잔이에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었던 '의기'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하백원과 우명옥이라는 도공이 만들었다고 알려졌고요. 강원도 홍천에는 계영배를 만든 우명옥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요.

(사진 왼쪽)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계영배'를 연구 끝에 재현한 술잔이에요. (사진 오른쪽)어린이들이 도자기를 만들고 있네요. 도자기를 굽는 도공 우명옥은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며 계영배를 만들었어요. /광주시 제공·이재우 기자
(사진 왼쪽)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계영배'를 연구 끝에 재현한 술잔이에요. (사진 오른쪽)어린이들이 도자기를 만들고 있네요. 도자기를 굽는 도공 우명옥은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며 계영배를 만들었어요. /광주시 제공·이재우 기자


우명옥은 강원도 산골에서 질그릇을 구워 파는 인물이었어요. 비록 질그릇 굽는 일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사기그릇으로 유명한 분원(★)에 나가 일하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지요.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광주분원에 찾아가 실력 있는 스승을 만났고, 사기그릇 만드는 일을 열심히 배우고 익혔어요. 마침내 '설백자기(雪白磁器)'라는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어 왕실에 진상했지요. 임금은 그가 만든 설백자기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상을 내리며 크게 칭찬을 했고, 이름난 도공이 된 우명옥은 명성과 재물을 얻게 됐어요.

그러나 동료의 꼬임에 넘어가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명예와 재산을 모두 잃고 말았어요. 그의 스승은 다시 훌륭한 그릇을 만들라며 간곡하게 당부했고, 그제야 우명옥은 잘못을 뉘우치고 술을 끊어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밤낮없이 그가 열심히 만든 것은 바로 술잔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만든 술잔을 스승께 내어놓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스승님, 이 술잔은 '계영배'라는 술잔이옵니다." 그가 술잔에 술을 가득히 붓자 잔에서 술이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그가 다시 술을 7할쯤 붓자, 이번에는 술이 그대로 잔에 남아 있었지요. 우명옥은 계영배를 스승께 드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해요.

그가 만든 계영배는 훗날 의주 출신 상인 임상옥에게 전해졌대요. 임상옥은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며 살면서 더 큰 재물을 모았어요. 그리고 자신이 모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존경받는 부자가 되었다고 해요. 계영배가 주는 교훈을 바로 알고 제대로 따른 것이지요.

★할(割):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 1할은 전체 수량의 10분의 1로, 1푼의 열 배임.

★분원(分院): 조선 시대에 사옹원에서 쓰는 사기그릇을 만들던 곳.

지호진·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