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역사

왕비의 맏아들이 무조건 다음 왕?
조선 임금 27명 중 7명뿐

입력 : 2013.09.04 11:34
지난 22일(현지 시각)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세손빈 사이에서 아들 조지 왕자가 태어났어요
지난 22일(현지 시각)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세손빈 사이에서 아들 조지 왕자가 태어났어요. /로이터 뉴스1
얼마 전 영국 왕실에서 로열 베이비가 탄생해 영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관심과 축하 열기가 뜨거웠어요. 로열 베이비(royal baby)는 '왕실의 아기'란 뜻으로,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세손빈 사이에 태어난 아기예요. 이름은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공식 명칭은 케임브리지 조지 왕자예요. 세상에 나오자마자 왕위 계승 서열 3위에 올랐지요.

영국 왕실에는 아기의 할아버지인 찰스 왕세자가 있어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와 셋째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도 있고요. 또 아기의 삼촌인 해리 왕자도 있지요. 그런데 새로 태어난 아기 조지가 삼촌과 다른 할아버지들을 제치고 왕위계승 서열 3위에 오른 것은 '국왕의 왕위는 첫째 자녀에게 계승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해요. 영국 왕실은 1701년부터 국왕 직계의 장자(長子) 우선 원칙으로 왕위를 계승해왔어요. 국왕에게 아들이나 친손자가 없을 경우 딸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했고요. 지난 2011년부터는 아들딸 구별 없이 국왕의 첫째 자녀가 왕위를 잇는 것으로 왕위 계승 원칙을 바꿨다고 해요. 그렇다면 여러 왕조 국가가 있었던 우리 역사에서 왕위 계승은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고구려·백제·신라의 왕위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졌어요. 이를 '부자 상속'이라고 해요. 그렇지만 이들이 한결같이 부자 상속으로 왕위를 계승한 것은 아니었어요. 고구려 왕조 성립 초기에는 형에게서 동생에게로 왕위가 계승되는 형제 상속이 빈번하기도 했고, 백제는 왕의 성이 바뀌는 등 왕실이 교체되며 왕위가 계승됐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해요. 신라 초기에도 왕족인 박·석·김 3성의 왕족이 번갈아가며 왕위를 계승했어요. 또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어, 왕족 중 부계와 모계가 모두 성골인 경우 우선적으로 왕으로 추대돼 왕위를 이었지요. 이 때문에 선덕여왕을 비롯해 3명의 여왕이 등장하기도 했고요.

고대 삼국이 부자 상속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는 그 시기 왕권이 그리 강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고대 삼국의 국가 성립 초기에 제가회의나 화백회의 등 귀족협의기구에서 왕위 계승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는 것이 바로 그 점을 짐작하게 해주지요.

1874년(고종 11) 고종의 왕세자(순종)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의식이 치러지는 모습을 그린 궁중기록화 ‘왕세자탄강진하도’랍니다
1874년(고종 11) 고종의 왕세자(순종)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의식이 치러지는 모습을 그린 궁중기록화 ‘왕세자탄강진하도’랍니다. /문화재청 제공

고려와 조선 왕조의 왕위 계승은 어땠을까요? 고려를 세운 왕건은 후대 왕들에게 유언으로 '훈요십조(訓要十條)'를 남겼어요. 그중 '왕위 계승은 적자적손(★)이 원칙이지만, 맏아들이 불초(★)할 경우 덕망 있는 자로 왕위를 잇도록 하라'는 내용이 있어요. 조선 역시 태종이 적서차별(★)을 강조한 뒤부터 왕비가 낳은 맏아들 즉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었고요.

그렇지만 고려와 조선에서도 이 원칙이 꼭 지켜진 것은 아니었어요. 왕비가 왕자를 낳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왕위를 둘러싼 권력자나 세력 사이의 다툼, 정변을 통한 왕위 찬탈 등으로 이런 원칙이 깨질 때가 잦았지요. 조선 왕조의 왕 27명 가운데 적장자 계승 원칙에 따라 왕위에 오른 이는 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까지 7명뿐이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지요.

★적자적손(嫡子嫡孫): 본처가 낳은 아들과 적자의 본처가 낳은 아들.

★불초(不肖):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

★적서차별(嫡庶差別): 적자와 서자(첩이 낳은 자식)를 차별하는 제도.

지호진·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