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스님들은 왜 고기를 멀리할까?

입력 : 2013.09.02 23:50 | 수정 : 2013.09.27 10:28

스님이 기러기 떼 보며 입맛을 다시자 그중에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대요
고기를 탐했던 자신을 뉘우치면서 '안탑'을 세워 죽은 기러기 애도했죠

'큰 기러기 탑'이란 뜻의 '대안탑'
인도를 다녀왔던 당나라 현장 스님이 그 정신을 잇기 위해 세운 탑이에요

올 여름방학에는 온 가족이 산사(山寺) 체험을 하기로 했어요. 자연 속에 자리한 절에 들어가 먹고 자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할 기회를 갖자는 거지요. "아, 절에 들어가니까 고기는 못 먹겠구나. 그 전에 실컷 먹어 둬야지!"라고 입맛을 다시자 뒤에서 누나가 "돼지야!"라며 꿀밤을 때렸어요. "아얏! 왜 때려? 고기를 먹는 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 누나한테 대들면서도 궁금해졌어요. 대체 불교에서는 왜 스님들에게 고기를 못 먹게 할까요? 게다가 사찰 음식은 맵고 짠 양념도 쓰지 않아서, 솔직히 맛을 잘 모르겠거든요.

"대안탑(大雁塔)에 갔을 때 생각 안 나? 탑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들었잖아." 누나가 말하자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어요. 대안탑은 중국 시안의 대자은사(大慈恩寺)란 큰 절에 세워진 불탑이랍니다. 당나라 태종 때인 7세기에 인도를 방문해 수많은 불교 경전을 갖고 돌아온 현장 스님이 그 탑을 짓고 경전을 보관했대요. "'큰 기러기 탑'이라는 뜻은 기억나는데…, 왜 '기러기'란 이름이 붙었다고 했더라? 아, 모르겠다!" 누나는 '그러니까 네가 고기 타령을 하지!' 핀잔이라도 주듯 제 기억을 되살려 줬어요.

중국 시안의 대안탑이에요.
중국 시안의 대안탑이에요. 현장 스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당 고종 때 지었고, 무측천이 재건했다고 해요. /Corbis 토픽이미지
현장 스님이 인도로 간 것은 석가모니의 고향에 가서 불교를 제대로 탐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당시 당나라는 나라의 허락 없이 개인이 외국과 교류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지만, 현장 스님은 인도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몰래 당나라를 탈출했어요. 험준한 산과 불타는 사막을 건너 인도에 간 현장 스님은 불교 성지도 방문하고 열심히 경전도 모았답니다. "어느 날 현장 스님은 안탑(雁塔·기러기 탑)이라고 이름 붙은 탑을 보았어. 인도 곳곳에서 많은 탑을 봤지만, 기러기 탑은 처음이어서 이상하게 여겼지." 그곳의 비구승(★) 한 분이 현장 스님에게 안탑의 유래를 설명했어요. 어느 날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비구승이 농담처럼 이야기했대요. "오늘은 승도(僧徒)들의 식사가 충분치 못했어. 만약에 보살이 기러기 모습을 하고 나타난 거라면 우리한테 고기를 베풀어 주었을 텐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러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비구승 앞에 떨어져 죽었대요. 승도들은 기러기의 죽음을 애도하며 탑을 세워 '기러기 탑'이라 이름 붙이고, 고기를 멀리했대요.

"당나라로 돌아온 현장 스님은 그 기억을 되새기며 자신이 쌓은 탑을 대안탑이라고 부른 거야." 누나는 한참 전에 들었던 얘기도 똑 부러지게 떠올리네요.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내 의문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키웠어요. "뭐야, 불교에서도 처음에는 고기를 먹었다는 얘기네?"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엄마가 무슨 생각이 난 듯 끼어드셨어요. "맞아!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외국을 방문했을 때 비프스테이크를 좋아한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한참 산사 체험 계획을 짜고 계시던 아빠도 한마디 하셨어요. "아빠도 태국에 갔을 때 그곳 스님들은 고기 요리를 거절하지 않는다고 들었단다."

현장 스님은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탐구하고자 인도에 다녀왔지요(왼쪽 사진). 태국의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음식을 공양받는‘탁발’모습이에요(오른쪽 사진).
현장 스님은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탐구하고자 인도에 다녀왔지요(왼쪽 사진). 태국의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음식을 공양받는‘탁발’모습이에요(오른쪽 사진). /Corbis 토픽이미지
우리 가족은 뜻하지 않게 불교의 음식 문화에 대해 조사하게 됐어요. 대안탑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인도에서 처음 불교가 생겨났을 때는 육식을 특별히 금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시고 한참 지나서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났고, 육식도 금했어요. '대승(大乘)'은 '많은 사람을 구제해 태우는 큰 수레'를 뜻하는데, 불교를 출가한 승려만의 종교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로 넓히려는 생각이 담겨 있었어요. 대승불교는 중국과 우리나라·일본 등으로 퍼졌고, 초기 불교를 잇는 소승불교는 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로 퍼져 갔어요. 티베트 불교는 대승불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유목을 하는 티베트 지역의 환경에 맞춰 육식을 엄격히 금지하지는 않는다고 해요.

"아하, 그래서 중국 스님인 현장 스님이 죽은 기러기 이야기에 감동했던 거구나. 중국에서 스님이 됐으니까 처음부터 대승불교를 믿었을 거 아냐?" 누나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사찰 음식 먹고 날씬해질 자기 모습을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왜 공연히 심술이 날까요? 나는 현장 스님이 삼장법사로 등장하는 소설 '서유기'를 떠올리며 한마디 툭 던졌어요. "쳇, 그러면 삼장법사 따라갔던 저팔계도 고기 안 먹고 채식만 했을 거 아냐!"


★비구승(比丘僧): 출가해 계율을 따르고 독신으로 불도를 닦는 승려.
강응천 역사 저술가 |
감수 고혜련 부산대 교수(사학) |